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운 하루였다. 새벽길을 달려 가서 3년만에 다시 찾은 간현암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간현유원지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자체는 관광용 구름다리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현암장으로 들어가는 나무다리를 건너기 전에 암벽스크린 설치를 위해 벌목한 상처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민둥산처럼 벌거벗은 모습의 간현암은 처음 왔을 때의 아늑하고 포근했던 인상을 나의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가라앉은 기분 탓인지 몸까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자연파괴의 현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클라이밍에 집중할 수만은 없었다. 그저 걸어진 로프에 의지해서 새로운 루트의 맛이나 본다는 심정으로 의무방어전 하듯 등반했다.
어차피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개발사업이라면 좀 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여러 사람이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스키장이나 골프장 같은 대형 개발사업에 비하면 레저스포츠를 위한 시설 중에서 암벽장은 상대적으로 자연파괴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클라이머들의 생각이 존중되었으면 좋겠다. 나무그늘을 잃어버린 간현암장의 빌레이 스테이션(belay station)은 클라이머들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하여 좀 더 보기 좋게 단장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암벽스크린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클라이머들 모두가 만족스런 레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상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다수의 횡포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를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체육 강국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나의 여가생활인 클라이밍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다. 우리들의 삶 곳곳에 희노애락이 공존하듯, 등반도 즐거울 때가 있으면 오늘 같이 기분 내키지 않고 별로일 때도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등반이 조금 잘 된다고 우쭐대거나 거만떨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잘 안 된다고 너무 의기소침해 있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꾸준히 일신우일신 하자는 다짐을 잃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등반은 여러 가지로 반성할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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