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캠퍼스의 활기찬 봄은 언제쯤일까?

빌레이 2020. 3. 25. 21:35

신학기 개강으로 예년 같으면 왁자지껄 시끄러울 정도로 활기가 넘쳐야 할 대학 캠퍼스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탓에 애초의 개강일은 2주 연기되었다. 명목상으로 바뀐 개강일자는 지난 주 월요일이었지만 학생들은 등교하지 못했다. 모든 강의는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학생들이 출석하는 대면 수업은 하지 못한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평소엔 학교 울타리가 어디인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교내에는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기 위한 교수진과 교직원, 그리고 소수의 대학원생들만 각자의 고립된 공간 속에서 근무 중이다. 회의도 거의 없고 모든 의사소통은 이메일이나 휴대폰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동료 교수들 간에도 서로 의도적으로 통화를 하지 않는다. 온라인 강의를 녹화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의 근무 행태도 많이 달라졌다. 혼자 쓰는 연구실에 들어가면 하루종일 거의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라인 강의를 위한 준비는 일반 강의를 준비할 때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요한다. 훨씬 자세한 강의노트를 만들어야 하고, 컴퓨터 모니터와 웹카메라를 쳐다보고 동영상 강의를 혼자서 녹화한 후, 가상대학 서버에 미리 업로드 해야 한다. 물론 사이버 강의를 위한 웹 페이지나 온라인 학습서버 등과 같은 기술적 지원 시스템은 충분히 잘 갖추어져 있다. 가상의 수강생들을 생각하면서 홀로 몇 시간을 강의하다 보면 상당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지난 주까지만 해도 사람이 아닌 컴퓨터와 대화하고 있는 내 모습이 생경하고 한편으론 처량해 보이기도 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 실천을 강력히 요구하기 때문에 점심도 거의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혼자서 까먹곤 한다.


너그럽게 생각해보면 온라인 강의의 장점도 있기는 있다. 우선 출근할 때 옷매무새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운동 삼아 걸어서 출퇴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정성스레 싸준 아내의 도시락도 매일 혼자서 먹으면 물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은 도시락 싸는 걸 쉬게 했다. 아침에 나를 배웅하는 아내의 얼굴이 밝아진 듯 보였다. 그동안 힘들고 귀찮았을 것이다. 점심시간만이라도 봄볕을 쬐고 싶어서 일부러 연구실 밖으로 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공대의 햄버거 가게를 이용하기로 했다. 최근에 학교 둘레에 조성된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서 공학관으로 향했다.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동안 거의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학교 주변에도 봄꽃이 만개했다. 북한산 언저리에 듬성듬성 소박하게 피어난 진달래가 참으로 반가웠다. 개나리와 산수유꽃도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평소엔 보지 못했던 체육관 옆의 홍매화도 내 눈길을 끌었다. 캠퍼스가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봄햇살 받으면서 홀로 먹는 햄버거 맛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봄꽃이 아무리 예쁘고 반가워도 학생들 없이 고요한 캠퍼스는 뭔가 이상했다. 앞으로 산벚꽃이 만개하고 철쭉이 피어나는 4월이 오면 학교 주변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싱그러움 가득한 젊음의 함성이 메아리 치는 캠퍼스의 활기찬 분위기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