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에 걸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겨울이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걸 이겨보겠다고 빙벽등반에 다시 도전했는데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수요일부터 복통이 심해졌다. 집 근처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으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금요일 오전에 처제의 병원까지 찾아가서 링거주사를 맞으니 오후부터는 한결 나아진다. 그래도 주말에 있을 동계 알파인 등반교육에 참가할 몸상태는 아니었다. 일단은 가보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돌아오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고 배낭을 꾸려본다.
내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 위장에 탈이 날때면 안창호 선생을 떠올리게 된다. 평생 극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리면서도 조국을 위해 큰 일을 하셨던 도산 선생을 생각하면서 동병상련의 감정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의지를 다져보는 것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다.아내가 새벽에 일어나 끓여준 죽을 보온병에 챙겨가니 한결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진다. 산에서는 특히나 내 살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운악산 아래의 가평 새문안교회 수양관 앞에서 2주만에 다시 만난 동기 교육생들과 전선생님을 비롯한 KMG 멤버들 모습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한북정맥길에 속하는 주능선이 포천시와 가평군을 가르는 운악산이다. 가평군 현리 방향에 있는 써미트 폭포를 찾아가는 길은 채석장을 통과해야 한다. 자주 다녀서 내게는 손바닥 보듯 환한 운악산 등산로 중에서 아직까지 밟아보지 못했던 곳이다. 산을 깍아내리는 채석장이 자연의 큰 상처로 여겨져 일부러 외면했던 지역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프로치 하는 길이 평소보다 힘겹다. 4일 내내 죽만 먹고 견딘 허약한 몸은 땀을 비오듯 쏟아낸다. 그래도 산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좋아서 기분은 최고다. 몸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산꾼이라는 생각으로 빙벽등반 교육에 임한다.
결빙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써미트 폭포에서의 빙벽등반은 어렵고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잘 견뎌준 몸상태 덕분에 소극적이나마 교육에 참석할 수 있었다. 춘천시 외곽의 민박집에서 진행된 야간 이론교육은 꽤 흥미로웠다. 막국수집에서의 단체 저녁식사를 책임져 주셨던 선배님께서 실전에서 겪은 어려운 상황들에 대한 대처법과 배낭 속에 자일을 정리하는 방법 등은 실전에서 매우 유용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교육은 화천의 딴산 인공빙벽에서 이루어졌다. 근력이 회복되지 않아서 한 차례만 붙어보고 말았지만 때마침 내려준 함박눈이 모든 것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얼어붙은 강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앉듯 쌓이는 함박눈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문득 인근의 화천수력발전소에서 군생활을 하셨던 하늘나라의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내 맘 속에 아련한 슬픔과 함께 겨울 소풍을 온 듯한 포근함이 공존했다.
▲ 결빙 상태가 좋지 않은 운악산 써미트 폭포에서 전샘이 시범 등반 중이다.
▲ 어프로치 중간의 휴식타임. 2주만에 다시 만난 동기 교육생들이 반갑다.
▲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배낭 너머로 빙폭이 보이기 시작한다.
▲ 설명을 들을 땐 이해가 잘 되는데... 막상 붙어보면 몽키행(monkey hang)이 안 된다는...ㅠㅠ
▲ 전샘처럼 멋지게 등반할려면... 나 같은 몸치는 많이 노력하는 수 밖에...
▲ 이튿날 교육은 화천의 딴산유원지에서...
▲ 딴산 빙벽장으로 출근하시는 전샘... 강물이 징검다리 사이를 힘차게 흘러가는데... 반갑지 않은 표정...ㅎㅎ
▲ 인공적으로 얼린 빙폭이라서 그런지...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생경한 모습이랄까...
▲ 제일 안쪽의 아늑한 공간에 있는 빙폭에서 교육등반은 계속되고...
▲ 서서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 근래에 보기드문... 목화솜처럼 풍성한 함박눈이다.
▲ 폰카라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함박눈 내린 딴산에서는 등반 말고 딴짓을 해도 즐거웠다.^^
▲ 함박눈에도 아랑곳없이 등반에 열중하는 모습이 부럽다.^^
몸관리 잘 해서 다음엔 나도 더욱 열심히 등반교육에 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 열심히 등반한 당신... 이제는 퇴근이다. 닭갈비 먹으러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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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전용학 선생님이 찍어준 사진이다.
▲ 운악산 써미트 폭포에서... 일단은 자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붙어본다...
▲ 폭포수에 젖은 후... 방수복으로 갈아입고... 얼음 위에서의 아이젠 걷기 교육 중...
▲ 좋지 않은 몸이었지만...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 함박눈이 내려서 즐거웠던 딴산에서... 문득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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