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강촌 유선대 암장 - 2019년 10월 12일

빌레이 2019. 10. 13. 04:22

가을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이런 망상을 해본다. 등산과 암벽등반을 즐기기에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는 하루 하루가 아까울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을은 더없이 바쁜 계절이다. 추수하느라 바쁜 농부처럼 나의 직장 생활도 그 어느 때보다 가을철에 가장 분주하다. 그래서 가을에만 방학이 없나보다. 봄방학, 여름방학, 겨울방학은 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일과 등반을 모두 만족스럽게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길 밖에 다른 왕도는 없다. 평소에 강인한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이렇듯 좋은 계절인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보내야 한다. 마음 속에 이런 다짐을 새기면서 유선대 암장으로 어프로치 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강선사 위에 조성된 야생화정원에 듬성듬성 피어난 구절초 무리들이 환하게 반겨주니 오늘의 등반이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다.


강촌의 유선대 암장은 여느 암장에 비해서 피치가 길고 난이도가 적당한 루트들이 다양하면서 세 피치의 멀티피치 등반까지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한편으로는 설악산 암벽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라는 인상 때문인지 처음 방문했던 3년 전부터 매년 찾게 되는 곳이다. 평소에 실내암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현서씨가 처음으로 동행하여 은경이와 함께 셋이서 오붓하게 등반에 집중하면서 보람찬 하루를 즐길 수 있었다. 운동하면서 마주칠 때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현서씨는 주변 사람들을 밝게 해주는 에너지가 넘치는 아가씨다. 인공암벽에서의 클라이밍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자연바위에서의 등반 경험이 적었던 현서씨는 신중하고 유연한 몸놀림으로 유선대 암벽에서의 첫 등반을 멋지게 해치웠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 함께 줄을 묶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9시 무렵부터는 유선대 암벽에 붙을 수 있었다. 오전에는 좌벽에서 세 루트를 오르내리고, 점심 후에는 멀티피치 등반으로 정상을 밟았다. 북한강 물줄기와 삼악산을 품은 강촌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선대 정상에서의 마무리는 자일파티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포인트였다. 대형 태풍인 '하기비스'가 일본에 상륙한 영향으로 설악산에서의 암벽등반이 갑자기 금지 되어 유선대로 왔다는 옆팀의 전언이 있었다. 그렇지만 유선대엔 평소보다 센 바람이 잠깐 동안 부는 것을 가끔 느꼈을 뿐 등반 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신선이 노는 바위라 하여 유선대(遊仙臺)라 부른다는 이곳 암장에서 한팀이 되어 신선놀음처럼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는 팀웍을 발휘해 준 자일파티인 은경과 현서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아침부터 입속에서 맴돌았던, 계피와 정바비로 구성된 2인조 그룹 '가을방학'이 부른 노래 <가을방학>의 가사를 여기에 옮겨본다.           



<가을방학>


넌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좋았었다고 말했지

여름도 겨울도 넌 싫었고 봄날이란 녀석도 도무지 네 맘 같진 않았었다며

하지만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이 맘 때 하늘을 보면 그냥 멍하니 보고 있으면

왠지 좋은 날들이 올 것만 같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절대 너를 울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정말 좋아하게 되었기에 절대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게 하고 싶었어

하지만 넌 날 보며 미소를 짓네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넌 익숙하다 했지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

        


▲ 난이도에 상관 없이 높이가 30미터 가까이 되는 루트를 '로프 테이크' 없이 완등했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 어프로치 초입의 야생화 정원에서 구절초 무리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 좌벽의 쉬운 곳부터 줄을 걸고 두번씩 오르내리는 것으로 몸을 풀어본다.


▲ 현서씨가 처음으로 유선대 암벽에 붙는다.


▲ 톱로핑이지만 빌레이는 항상 신중하게...


▲ 현서씨의 동작은 실내암장에서보다 신중할 수 밖에 없다.


▲ 은경이는 언제나처럼 멋진 무브를 보여준다.


▲ 두번째 루트인 '벚꽃 피는 날'을 선등 중이다. 26미터 높이에 짧은 오버행이 세 차례 나타난다.


▲ 은경이가 '벚꽃 피는 날'을 톱로핑으로 오른다.


▲ 조약돌에 루트명을 새겨 놓은 것이 이채롭다. 


▲ 현서씨가 신중하게 홀드를 찾아가며 오르고 있다.


▲ 은경이가 23미터 높이의 '참나무' 루트를 선등 중이다.


▲ 내가 체감하는 루트의 난이도는 기준이 일정하지 않은 듯하다. 


▲ 점심 후에는 우벽에서 멀티피치 등반에 나선다.


▲ 현서씨는 멀티피치 등반이 처음이라서 등반시스템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 잘 해주었다.


▲ 둘째 피치 초반부의 페이스에서 동작을 풀지 못하는 바람에 "텐션"을 외쳐야 했다.


▲ 볼트 우측에 양호한 홀드가 있는데 좌측에서 홀드를 찾으려 하면 동작이 꼬이는 구간이다. 


▲ 정상의 확보점으로 향하는 '그리움길' 루트 셋째 피치를 오르고 있다.


▲ 초반은 페이스이고, 중반부에 듬직한 언더홀드를 잡고 오버행을 올라서는 구간이 재미 있다. 


▲ 현서씨는 홀드가 미세한 페이스나 슬랩 구간이 아직은 낯설다고 한다.


▲ 유선대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북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 강촌역과 경춘선 철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 만족스런 등반 후에 정상에서 맛보는 성취감은 비할 데가 없다.


▲ 다음 번엔 우측 큰벽의 침니와 릿지 루트를 등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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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 유선대 암장 개념도








 

좌벽

샹그리라 가는길 : 샹그리라(=숨겨진 이상향)를 찾아가는 어느 등반가의 모습

수류화개 :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 삼라만상 본연의 모습

작은 언덕 : 고빗사위 구간에 작은 턱을 넘어서야 한다

오르락 : 오름짓의 즐거움

시월이 가기전에 : 을미년(2015) 10월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하다

참나무 : 코스가 끝나는 곳에 참나무가 있다

벚꽃 피는 날 : 벚꽃이 활짝 핀날 이곳에 올라 아래 세상의 정취를 느끼다

바다리 :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다리벌과 정열적인 등반 초심자의 모습이 닮았다

 

작은벽

초심 : 암벽등반 입문 시절의 겸손함을 잊지말자

101: 백의 첫번째 코스

시동 : 개척작업에 시동을 걸다(개척시작)

102: 백의 두번째 코스

 

큰벽

201: 101동을 오르고 좀 아쉽다면 올라보라. 작은벽 2층에 있는 첫번째

202: 102동이 짧아 연속하여 오르는 재미를 더했다. 작은벽 2층에 있는 두번째

코난발가락 :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줘야 산다(만화영화 “코난”에 나오는 장면)

EMPTY : 천공작업중 오일이 바닥나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움 : 지난날 등반하던 추억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피어 올랐다

프리텐션(Pre-tention) : 미리 긴장을 가하다

HANBIT : 크고 넓은 마음으로 하나되어 순수하고 참된 산악인을 상징한다

하늘문 : 하늘에 닿을 듯 정상으로 향하다

 

우벽

통천문 : 하늘과 통하는 문(오를수록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잔트가르 : 몽골어로 “최강의 사내”를 의미한다

챙이올 : 내가 그랬듯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처음 시작할 당시를 잊지 말자)

선녀문 : 달밤에 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 올 듯 신비스럽다

바람개비 : 시원한 바람이 불면 하염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