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아미동길 등반 - 2019년 5월 4일

빌레이 2019. 5. 4. 20:30

어린이날에 대체 공휴일이 더해진 3일간의 황금 연휴가 시작된 날이다. 마음 같아선 악우들과 지방으로 등반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상태라서 나만 홀로 훌쩍 떠날 수는 없었다. 암투병 중이신 장모님의 병수발로 여념이 없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평소 등반을 같이 다니던 사람들과의 약속도 잘 잡히지 않아서 토요일 등반을 망설이고 있던 차에 실내암장에서 같이 운동하고 있는 진균형님과 서로 뜻이 통하게 되었다. 때마침 형님도 소속 산악회의 주말 등반 계획이 어그러져 우리가 인수봉에서 처음으로 함께 줄을 묶어보기로 한 것이다.


실내암장이 있는 수유역에서 9시에 세 사람이 만난다. 진균형님의 친동생인 용균씨도 같이 할 예정이었으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등반 후에 합류하기로 하고, 진균형님, 은경, 나, 이렇게 셋이서 택시에 동승하여 도선사 주차장에서 하차한다. 천천히 어프로치를 시작하는데 허리가 온전치 않은 내 몸은 그다지 좋은 상태가 아니다. 하루재에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올려다본 인수봉 암벽에는 이미 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붙어있다. 언뜻 살펴본 진균형님은 빈 루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하신다. 전국에 있는 클라이머들이 모두 인수봉에 집결한 듯한 느낌이다. 동벽 앞에 도착해서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오를만한 루트는 죄다 등반팀들이 붙어있다.


우리 세 사람도 모두 올해 첫 인수봉 등반이니 사람들이 많다고 한탄할 일은 아니다. 오늘 선등을 서시는 진균형님의 뜻대로 아미동길을 오르기로 한다. 아카데미산악회에서 1973년도에 개척했다는 아미동길은 산악회의 명칭과 주개척자인 이동일씨의 이름을 혼합하여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대슬랩 좌측 상부에서 출발하여 첫 피치 40미터, 둘째 피치 50미터로 등반하여 남동면의 작은 오아시스에 올라선다. 우리 앞에 일본팀을 비롯한 세 팀이 출발하기를 기다리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들 베테랑이랄 수 있는 우리팀의 등반 속도는 그 어느 팀보다 빨랐지만 초보자분들이 낄 수 밖에 없는 다른 팀의 속도는 더디기 마련이다. 일본 팀의 등반 속도 역시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진균형님이 믿음직한 자세로 리딩하시고, 내가 중간에서 쎄컨을 맡으며 등반시스템을 조율한다. 라스트를 맡은 은경이는 간간히 사진촬영을 하면서 나머지 장비를 깔끔하게 회수한다. 은경이와 나는 선등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니 슬랩등반 연습을 하듯 즐겁게 오른다. 확보점에서의 정체 현상 때문에 피치 중간에서 멈춰야 하는 등 많은 불편함 속에서도 진균형님은 여유를 잃지 않고 안전하게 리딩하신다. 인수B길의 항아리크랙이 시작되는 점에서 아미동길은 좌측으로 갈라진다. 레이백과 스태밍 동작이 자연스러워 그 어느 구간보다 등반이 즐거운 직상크랙이 아미동길의 특징적인 피치라 할 수 있다. 손홀드가 양호해서 스포츠클라이밍 하는 이들에겐 이른바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구간이지만 중간 볼트가 확보점 바로 아래에 하나 있을 뿐이어서 선등자는 안전을 위해 캠을 설치하면서 올라야 한다.


올해 첫 인수봉 등반이라는 것을 실감한 건 마지막 피치에서다. 개념도 상에는 5.10a 난이도로 나와 있는 슬랩 구간인데 거의 페이스로 느껴진다. 피치 출발 지점에서는 올록볼록한 슬랩에 스탠스가 좋을 것 같았는데 막상 붙어보니 예상보다 경사각이 크다. 중간의 세로크랙을 오른손 홀드로 잡기 직전이 애매하다. 진균형님도 이부분에서 잠시 쉬었던 걸 보면 약간 애를 먹은 듯하다. 자일파티 모두가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마지막 확보점에 모였을 때의 기분은 항상 최고조에 이른다. 낮에는 섭씨 28도까지 올라서 더울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인수봉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었다. 등반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에 만족스런 등반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60미터 두 번과 30미터 한 번의 하강으로 등반 출발점에 도착한다. 뒤늦게 올라온 용균씨가 도토리묵과 함께 형님이 좋아하시는 시원한 음료까지 짊어지고 올라와서 해맑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인수봉에서의 첫 등반을 상쾌하게 끝냈다는 만족감을 안고 산을 내려간다. 

              

        

▲ 진균형님이 아미동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직상크랙을 선등 중이다.


▲ 하루재를 향해 어프로치 하는 배낭은 무겁지만 신록의 푸르름 속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 하루재를 넘어서 바라본 인수봉은 벌써 개미처럼 붙어 있는 클라이머들로 가득하다. 


▲ 대슬랩 좌측 위에서 출발을 위해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 곳 하나 비어 있는 루트가 없는 듯하다.


▲ 인수봉 남동면 출발점에서 올려다본 풍경이다.


▲ 드디어 앞팀의 라스트가 오르고 진균형님이 출발하기 직전이다.


▲ 첫 피치는 약 40미터 길이의 슬랩으로 약간의 긴장감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 내가 쎄컨으로 첫 피치를 맘 편하게 오르고 있다. 


▲ 둘째 피치는 등반 거리 50미터의 비교적 완만한 슬랩이다.


▲ 올해는 인수봉 등반이 처음이라 슬랩 등반이 아직은 조금 낯설다. 


▲ 셋째 피치는 인수B길과 크로스 되는 구간이다.


▲ 예전엔 큰 소나무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 작은 오아시스에 많은 클라이머들이 쉬고 있다.

우리팀은 시야 확보를 위해서 나만 이곳으로 내려와 선등자 빌레이를 보았다.


▲ 우리 좌측의 경사각이 큰 남면 벽에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다.


▲ 셋째 피치를 오르는 중간에 인수B길과 교차하게 된다.

나중에 등반하는 사람들이 자일을 밑으로 통과시키는 것이 예의지만 등반에 집중하시느라 진균형님이 깜박하셨다.

내가 대신 인수B길 등반팀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


▲ 인수B길 항아리크랙 바로 밑의 확보점도 붐벼서 나무에 임시로 확보할 수 밖에 없었다.


▲ 우리 앞의 일본인 두 팀 중 한 팀은 유난히 등반 속도가 느렸다.


▲ 맨 좌측의 크랙이 아미동길이다. 진균형님이 중간에 캠 하나를 설치하고 오른다.


▲ 손홀드가 확실한 직상크랙이어서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 레이백과 발재밍을 번갈아 하면서 오르는 맛이 괜찮다.


▲ 진균형님이 아미동길의 마지막 피치를 선등 중이다. 


▲ 아래에서 보면 홀드가 좋을 듯한데 막상 붙어보면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진균형님이 크럭스 구간을 통과한 후 잠시 쉬고 계신다.


▲ 오목한 곳을 홀드로 공략하여 오르는데 각이 쎄서 그런지 살짝살짝 밀리는 기분이다.


▲ 마지막 확보점에 자일파티 모두가 모일 때의 기분은 항상 최고조에 이른다.


▲ 아미동길 종착점에서 계속 등반하면 인수봉 정상에 오를 수 있으나 우리는 하강한다.


▲ 우리 바로 앞에서 인수B길을 오르던 팀의 선등자가 우측 위로 보인다.

무지개 빛깔의 자일 색상이 인상적이다.


▲ 60미터 두 번과 30미터 한 번의 자일 하강으로 출발점에 돌아온다.


▲ 진균형님의 친동생인 용균씨가 뒤늦게 합류하여 뒷풀이를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