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경원대길 등반 - 2017년 6월 24일

빌레이 2017. 6. 26. 07:47

암벽등반을 즐기는 주변 사람들이 거의 한두 차례의 설악산 등반을 다녀온 듯하다. 아무리 설악일지라도 사람들로 붐비는 바윗길이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래서 올해는 일부러 조금 한산해진 시기에 설악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주말의 비 예보를 의식하면서 토요일 새벽 4시에 서울을 떠난다. 아침 6시 반경 속초에 도착하여 순두부집에서 밥을 사먹고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설악산 토왕골에서의 등반은 언제나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일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습도 높은 날씨에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경원대길 초입에 누군가 데포해 놓은 듯한 배낭에 걸려 있어서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이 있다는 걸 감지한다. 첫 피치 출발점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대섭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등반에 나선다. 대섭이, 은경이, 기영형 순서로 등반한다. 첫 피치 확보점에서 열리는 시야로 확인한 결과 다행히 앞팀에 의한 정체 현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뒤에 따라오는 팀도 없으니 자일파티 네 사람이 설악의 품에 안겨서 오붓하고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비교적 쉬운 구간인 둘째와 셋째 피치는 한번에 오른다.


경원대길 등반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넷째 피치부터는 암벽화로 갈아신고 신중하게 오른다. 먼저 20 미터 길이의 직상 크랙에 캠으로 중간 확보점을 설치하면서 오른다. 손홀드가 양호하여 등반이 즐겁다. 그 이후는 우측의 사선 크랙으로 진행하면 오버행 구간에 두 개의 볼트가 보인다. 볼트에 자일을 클립한 후 침니로 올라서서 고드름처럼 튀어나온 홀드를 언더로 잡고 일어서면 어렵지 않게 오버행 턱을 넘어설 수 있다. 등반거리 40 미터에 이르는 이 넷째 피치는 긴장감을 가질 수 밖에 없으나 홀드를 잘 찾은 덕택인지 예전보다는 즐기면서 올라온 듯한 느낌이다.


다섯째 피치는 직상 침니로 시작되는 35 미터 길이로 수직 크랙이 많은 구간이지만 적절한 곳에 볼트가 있어서 캠을 설치하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여섯째 구간은 자일을 설치하지 않고 올라서서 네 사람 모두 1봉에 모여서 간식을 먹고 잠시 쉬어간다. 일곱째 피치는 1봉을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와서 맞은편 봉우리에 올라선 후 걷는 구간이 나온다. 다시 5 미터의 짧은 자일 하강을 하면 우측에 깊은 골짜기가 이어지는 여덟째 피치가 나온다. 여덟째 피치부터 열한 번째 피치까지는 날등과 피너클 지대가 이어지는데 푸석바위가 안정적이지 않아서 낙석에 각별히 주의하면서 올랐다.


자일파티 모두가 등반을 완료하고 정상에 오른 직후에 그간 간간히 흩뿌리던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하강하여 선녀봉으로 올라간 후 두 번의 자일 하강으로 별따기 코스의 정상부 릿지 사이의 협곡에 내려선다. 비가 내릴 때의 하강은 자일 회수에 각별히 유의해야 하기 때문에 자일 한 동으로 일부러 30 미터씩 나누어서 하강한 것이다. 물을 먹어서 미끄러운 바윗길을 조심하면서 별따기 코스의 정상부 능선으로 올라와서 토왕폭 삼거리에서 장비를 해제하는 것으로 모든 등반을 종료한다. 다행히 비는 세차게 내리지 않아서 토왕골 계곡을 통해서 설악동으로 하산할 때까지 큰 불편함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샤워 후에 처마 밑에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면서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니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