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루벤대학의 프리닐 교수님이 내한 하셨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신 프리닐 교수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나는 국가출연연구원에 근무하던 중 프리닐 교수가 이끄는 루벤대학의 연구소에 소속되어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했었다.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그 연구소에 소속된 나는 여러 가지가 낯설고 심적 부담 또한 컸었다. 그런 나에게 프리닐 교수는 여러 면에서 친절히 잘 대해주셨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국제 학회가 있을 때 기회가 닿으면 그를 초청했었다. 이번에도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초청 강연을 하시고 국내의 여러 대학과 연구소를 순회하면서 강연을 하셨다. 물론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도 오셔서 특강도 하시고 루벤대학과 우리 대학 간의 상호협력을 위한 협약식에도 참석하셨다. 우리 대학으로선 영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요일 밤 늦게까지 이어진 공식 일정을 마치고 금요일에는 프리닐 교수님께 짧은 여행을 시켜드리기로 약속했었다. 원래는 북한산 등산을 계획 했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는 바람에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 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외국 사람들에게 어떤 곳을 보여줄까 생각할 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고궁이나 박물관 같은 곳은 외국인 혼자서 다녀도 충분하다. 여행사에서 기획된 코스들도 마찬가지다. 프리닐 교수 같이 가까운 지인은 그가 좋아할만한 여행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10여 년 전에 제주도를 같이 여행하면서 성산 일출봉, 삼굼부리, 정방폭포, 산방산 및 용머리 해변 같은 자연 환경을 프리닐 교수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때를 상기하면서 한강변을 따라 가면서 팔당 주변과 두물머리를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계획해 보았다.
시청 주변에 있는 호텔에서 오전 11시 정각에 프리닐 교수를 픽업한다. 이번 여행엔 프리닐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배 교수도 동행한다. 강변북로가 막힐 시간이라서 광하문과 자하문 터널을 지나 세검정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내부순환도로에 올라선다. 북부간선도로로 갈아 타고 계속 직진하여 팔당역 인근의 한강변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점심 후 소화를 겸한 산책 코스로 다산문화관 인근의 팔당호반을 잠시 거닐기로 한다. 중앙선 폐철로를 자전거도로로 재탄생시킨 길을 걸어보고 지금은 기차역 구실을 못하는 능내역의 추억 어린 전시물들도 구경한다. 이어서 여름이면 연꽃으로 아름다울 팔당호수 주변을 산책한다.
영하의 추운 날씨지만 공기가 맑아서 다행이다. 겨울이라서 황량할줄 알았는데 연꽃들판 주변에 겨울 철새인 황새 무리를 볼 수 있어 살아있는 자연의 운치를 느낄 수 있으니 좋다. 우리도 보기 힘든 황새들의 군무를 프리닐 교수와 함께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30여 분의 산책을 마치고 두물머리로 이동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인 두물머리는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기 좋게 조성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두물머리의 멋진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일품이다. 카페 안에 우리 셋 외에는 모두 여자 손님들로 가득찬 것을 보며 프리닐 교수는 다소 의아해 하는 눈치다.
두물머리 산책을 끝내고 수종사로 이동한다. 자동차를 이용해 운길산 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으니 좋다. 수종사 경내에서 내려다보는 양수리 일대의 풍광을 나는 특별히 좋아한다. 프리닐 교수도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하신다. 남북 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수종사 앞마당에 서면 자연스레 통일을 염원하게 된다. 남과 북이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만나서 하나가 되는 통일이 이룩되기를 기원해본다. 수종사에서는 다도를 체험할 수 있다. 외국인이 오셨다고 다도 체험장을 지키고 계신 보살님이 우리를 안내해 주신다. 특별한 체험에 프리닐 교수도 만족해 하시는 듯하다. 석양이 질 무렵 산을 내려와 서울로 돌아온다. 오랜 지인인 프리닐 교수와 뜻깊은 여행을 다녀온 감회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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