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알프스 등반가 허긍열 씨와 함께 보낸 팔공산에서의 일박이일

빌레이 2010. 10. 28. 21:51

 

<몽블랑 익스프레스>의 저자인 허긍열 선생과 팔공산에서 일박이일을 보냈다.

순전히 저자와 독자 사이인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허 선생님과의 인연은 지난 유월의 알프스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주고 받은 이메일이 계기가 되었다.

일정이 엇갈린 탓에 샤모니에서 만나뵙지 못하고 얼마 전 허 선생님이 서울에 오셨을 때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후로 이메일을 통해 시간이 허락될 때 같이 등산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고 허 선생님의 배려로 이번에 같이 등산한 것이다.

케이티엑스를 타고 동대구역에 9시 반경 도착하니 허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버스를 타고 동화사 입구로 이동한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팔공산 주능선은 생각보다 길고 웅장하다. 갓바위와 동봉 중간 지점에 위치한 병풍바위로 향한다.

단풍과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팔공산의 오솔길이 편하고 좋다.  

 

여러 개의 바윗길이 있는 병풍바위 앞의 아늑한 장소에 짐을 풀고 장비를 착용한다.

올려다본 병풍바위는 직벽이다. 암벽 초짜인 내게는 버겁게 느껴진다. 영대길이라 불리는 루트에 허 선생님이 가뿐히 오른다.

뒤 따라 오르는 나는 버벅대며 거의 끌려가다 싶게 오른다. 자세가 좋지 않다보니 일 피치에 벌써 펌핑이 온다.

세 피치로 이루어진 영대길을 오르는 허 선생님은 한 마리 새처럼 가벼운 몸짓이고, 나는 둔한 개구리 같다.

어렵사리 영대길을 마치고 허 선생님께서 끌여주신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묘하다. 바위는 그만 하겠다고 먼저 말씀드린다.

한편으론 미안하고 다른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내 몸 상태가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내니 어쩔 수 없다.

 

내 실력을 배양해서 다음 기회에 암벽은 타기로 하고 종주길을 따라 캠핑지로 이동한다.

가을을 한껏 품고 있는 팔공산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며 동봉과 서봉을 거쳐 도착한 야영 장소는 여간 좋은 게 아니다.

바위로 둘러싸인 오목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으며 비교적 높은 고도임에도 식수가 풍부하다.

허 선생님이 준비한 만두라면으로 흡족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오소리 한 마리가 다가온다.

음식 냄새에 취해 우리 텐트를 공격해온다. 큰 돌맹이로 위협해도 아랑곳 않고 텐트 가장자리를 물어뜯는다.

허 선생님의 돌팔매질을 정통으로 맞고, 음식물을 텐트 윗주머니에 옮긴 조치 후에야 오소리의 소행은 잠잠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텐트 여기 저기가 오소리의 이빨 자국으로 손상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홀로 서봉에 올라 일출 후의 경치를 감상한다. 운해가 장관이다.

산에서의 일출은 더욱 신선하다. 떠오르는 해의 각도에 따라 명암을 달리하는 산줄기와 계곡의 모습도 변화무쌍하다.

커피와 떡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수태골을 따라 하산한다. 중간에 바윗골이라 불리는 암벽 등반지도 구경한다.

병풍바위와 함께 수태골에 위치한 바윗골도 <해골바위>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막걸리와 두부로 간단히 하산주를 마치고 대구 시내에서 허 선생님으로부터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는다.

허 선생님의 최신작 <알프스에서 온 엽서> 한 권도 증정받는 기쁨을 누리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허 선생님과 함께 있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동 시대를 살아온 탓인지 여러 모로 정서가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가 아는 유명 상업 등반가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오롯이 자기만의 등반 철학을 지켜가는 그의 모습이 멋져보였다.

실력 있는 전문 등반가임에도 등반 실력이 걸음마 단계에 있는 사람과 순순히 동행해주는 그의 넓은 마음이 좋았다.

휴먼 알피니스트라는 칭호가 정말로 어울리는 허긍열 선생과의 팔공산 일박이일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다.

 

1. 올려다 본 병풍바위 절벽... 직벽... 간간히 오버행... 지금 내 실력으론 무리...ㅎㅎ

 

2. 볼트가 보이는 크랙으로 오르는 영대길(영남대길)... 전체 세 피치... 거의 끌려갔다는...

 

3. 영대길 한 판 끝내고... 커피를 끌여주시는 허 선생...

 

4. 능선에 올라 바라본 병풍바위 영대길... 직벽을 오르기 위해선 인공 암벽에서 팔 힘을 좀 길러야 할 듯...

 

5. 암벽 시작 직전의 기념 촬영... 이 때는 웃고 있는데... 몇 분 후엔... ㅎㅎ

 

6. 능선길에서 잠시 휴식 중인 허긍열 선생... 텐트와 암벽 장비에 로프까지... 힘드셨을 것...

 

7. 동봉 정상에 올라 기념 촬영... 뒤로 보이는 사이트 기지가 비로봉...

 

8. 서봉 정상에서 백여 미터 아래에 위치한 캠핑지... 바위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

 

9. 캠핑지 주변 바위는 무등산 입석대의 축소판 같이 절경이다..

 

10. 오소리의 공격으로 찢어진 허 선생의 텐트... 피해가 많았던 야영...

 

11. 서봉 정상에서 본 일출...

 

12. 떠오른 해를 받고 있는 서봉 정상석...

 

13. 햇볕이 따뜻하고 좋아 서봉 정상에서 한참 동안 사진 찍기 놀이를 즐겼다..

 

14. 일출 직후의 산은 명암이 뚜렷해서 더욱 아름답다... 사광을 받아 반짝이는 암릉이 멋지다..

 

15. 서봉에서 한티재 방향으로 내리 뻗은 종주 능선... 팔공산 종주길은 상당히 길다..

 

16. 대구시 맞은편 군위 방면은 운해가 장관이다...

 

17. 처음엔 큰 호수가 있는 듯한 착각을 했었다..

 

18. 산줄기 넘어 펼쳐진 구름바다는 정말 멋지다..

 

19. 수태골에 위치한 바윗골의 대슬랩 앞에서 허 선생님과 하산길에 한 컷..

 

20. 허긍열 선생님의 최신작 <알프스에서 온 편지>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책 속의 사진들도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