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든 것이 잘 풀린 날이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무엇보다 기영형, 은경, 나, 이렇게 셋이서 단촐하게 줄을 묶은 등반은 어느 것 하나 흠 잡을 데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평소 주말의 인수봉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윗길 또한 한산했다. 주말의 인수봉 등반을 계획할 때면 항상 붐비는 바윗길에 대한 염려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그저 복불복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울 수 밖에 없는데, 오늘도 우리가 '크로니'와 '생공사' 루트 초입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예닐곱 명으로 구성된 팀이 공터를 다 차지한 채 등반 준비 중에 있었다. 우리팀은 나무 그늘 아래의 협소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팀은 우리와 달리 '생공사' 루트에 붙을 거라 했다.
애초에 이번 등반 계획을 짤 때엔 '크로니'와 '인수B' 크랙 코스 중에서 현장 사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루트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에 이른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는 자연스레 좀 더 빨리 정상에 다녀올 수 있는 '인수B' 크랙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첫 피치는 50미터가 넘는 세로 크랙이 길게 이어진다. 내가 착용하고 있던 캠을 구간 별로 잘 안배했던 것이 만족스런 자유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올라갈수록 경사각이 쎄지므로 후반부를 위해서 캠을 아껴가며 적절히 사용했고, 확보점 직전에서는 BD 1호 캠을 설치한 후, 손재밍을 확실히 해서 과감하게 한 방에 오를 수 있었다.
둘째 피치는 비교적 쉬운 구간이지만 50미터 이상 진행하기 때문에 로프 유통에 신경써야 했고, 다음 피치를 항아리 크랙이 아닌 스플리터 크랙 구간으로 오르기 위해서 '아미동' 루트의 확보점을 이용했다. 내가 2피치 확보점에 도착했을 때 우측 건너편 '의대' 루트에 한 팀이 붙어 있을 뿐, 남동면의 주변 루트엔 아무도 없어서 오늘이 토요일이 맞나 잠시 의심스러워 했었다. 설악산 바윗길이 열리는 첫 주말이어서 그럴 거라는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듯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인 3피치 스플리터 크랙에서는 반드시 자유등반에 성공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바위에 붙었다. 두 번째 도전까지는 캠을 설치하느라 힘이 부쳐 루트 중간에서 행도깅하며 쉬어갈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크랙 후반부에서 한 번 쉬어갈까 하는 유혹의 순간이 있었는데, 조금만 더 참으면 완등이 멀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솟구쳐 그대로 밀어부쳤다. 그 결과 완등 후에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샤우팅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인 도파민 폭발 탓인지 재밍으로 인한 발가락 통증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1피치와 3피치의 부담스런 크랙 구간에서 내가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완벽한 자유등반에 성공한 쾌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네 번째 피치는 누워 있는 소나무 아래의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트래버스하는 노멀 루트와 다른 직상 크랙을 따라 올랐고, 60미터 가까이 이어지는 쉬운 크랙 구간인 5피치도 가볍게 통과했다.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6피치는 평소와 달리 우측의 참기름 바위가 아닌 좌측의 직상 슬랩 구간으로 올랐다. 정상에 도착해서 우리가 오른 등반 라인을 되짚어 보았다. 크랙을 따라 처음부터 거의 직선으로 정상까지 이어진 가장 자연스런 등반 궤적이란 생각에 완등의 만족감은 배가되었다.
등반 능력이 뛰어난 기영형과 은경이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니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오름짓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오랜 기간 함께 줄을 묶은 내공이 쌓인 덕택에 서로 말이 필요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런 등반시스템으로 짧은 시간 내에 등반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후에는 슬랩 구간이 대부분인 '건양' 루트에 붙을 생각이었으나, 작열하는 태양이 우리의 의지를 단숨에 꺽어 놓았고, 기영형이 사준다는 치맥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일찍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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