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여정' - 2025년 5월 21일(수)

빌레이 2025. 5. 21. 19:24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 프로젝트의 오늘 순서는 '여정'이다. 그런데 '여정' 루트 앞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해보니 크랙 주변이 온통 젖어 있고, 동남면 대침니에서 폭포처럼 뻗어내린 물길에선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실 어제도 살짝 비가 뿌렸고, 어젯밤에 본 일기예보 상으론 오늘 아침에 비가 내릴 거라 했었다. 그렇게도 좋던 수요일의 날씨 운도 이제 다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살펴보니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재를 넘어서면서 바라본 인수봉은 맑은 날처럼 선명했으나, 남벽에 가까이 갈수록 바위의 많은 부분이 젖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바위 표면이 마르길 기다리면서 평소와 달리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가졌다. '여정' 루트는 첫 피치의 크랙 구간을 오르는 게 꽤나 힘든 일인데 홀드가 젖어 있으니 기다리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어서 기범씨가 '여정' 루트 선등에 나서는데, 확보를 보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안전하게 첫 피치를 잘 마무리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거의 모든 구간이 슬랩이라서 바위 상태에 대한 걱정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여정'은 2 피치 슬랩을 올라선 후, 곧바로 동남면 대침니를 건너게 된다. 기범씨는 대침니 바로 왼쪽으로 진행하는 3, 4 피치를 묶어서 단 번에 올랐다. 이어지는 5, 6 피치도 단 번에 오른 후, 마지막 7 피치 확보점에 도착함으로써 '여정' 루트를 정코스로 완료했다. 첫 피치에 매달려서 크랙등반 연습을 하던 기억이 강했던 '여정'을 끝까지 올랐다는 감회가 새로웠다. 구선생님은 일찍 하산 하시고, 기범씨와 나는 '여정' 첫 피치에서 한 차례씩 더 매달렸다. 바위 상태는 아침보다 한결 나아졌으나, 체력이 소진된 나는 수 차례 쉬면서 용을 쓰고 올라야만 했다. 우리 세 명이 등반할 때, 우측에서는 다른 팀을 이끌고 오르시던 김선생님께서 사진을 찍어 주셨고, 좌측에서는 '크로니' 루트를 선등하던 젊은 친구가 내 블로그를 자주 봤다면서 아는 체를 하여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