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의 책상 위에는 항상 읽고 싶은 책들 서너 권이 굴러 다닌다. 언젠가부터 짬이 날 때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어들고 조금씩 읽어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독서에 대한 지구력이 많이 떨어진 탓도 있고, 시력이 안 좋아진 까닭도 한 몫 했다. 요즘엔 선뜻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장기간 동안 책상 위에 방치되고 있는 중인데, 그 중 하나가 <여행의 이유>이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쓴 산문집이다. 밤 비행기에 올라 스위스로 출국하는 오늘 아침에 온라인 체크인을 하고 보니 이 책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 전에 표시해 두었을 책갈피는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란 꼭지의 글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 왔고 그런 본능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 중략 ... 끝없이 이동하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위험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니, 인터넷 시대가 되면 수요가 줄어들 거라던 여행은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아내와 함께 보름 일정의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지난 겨울 장인어른께서 소천하신 후로 부모님을 모두 여의게 된 아내의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자 하는 뜻에서 결정했던 여행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해외 나들이의 공백기에 대한 보상 심리와 두 발이 성할 때 다시금 알프스 산자락을 걷고 싶다는 나의 바램을 충족시키고자 한 결정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도 결국엔 내 몸에 새겨진 여행의 본능, 흔히 말하는 방랑벽이 도진 결과일 것이다. 나도 호모 비아토르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득하게만 여겨졌던 출국 날짜는 어느새 현재 시점이 되었다. 제네바로 입국하여 산악도시인 사스페(Saas-Fee)와 체르마트(Zermatt)에서 체류하게 될 일정을 상기하면서 자연스레 과거의 스위스 여행을 떠올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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