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대학에서 5일 동안 열린 학회 일정 중에서 수요일 오후는 세션이 하나 뿐이었다.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으니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첫 날부터 눈여겨 봐 두었던 스르지(Srđ)산에 올라보기로 했다. 썸머타임 기간이라 밤 9시 무렵까지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데 지장이 없으니 일몰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후 4시 무렵에 올드타운 인근의 학회장 문턱을 나섰다. 해외에서 산행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광제도 함께 따라 나섰다. 멀리서 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올려다 보면서 등산로를 대충 가늠해 보았다. 사전에 구글 검색을 통해서 등산로 정보를 조사했더라면 조금은 편하게 산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으로 온 낯선 이국인 크로아티아에서 서민들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동네 골목길을 탐험하듯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 또한 여행자로서 재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까닭이다.
늦은 오후 시간인데도 여전히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살이 다소 문제였지만, 어느 정도 고도를 높인 후로는 시원한 해풍이 불어주어 견딜만 했다. 등산로를 탐색하면서 천천히 진행하다가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에 바라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었다. 시원스레 펼쳐진 아드리아해의 해안선을 따라 단단한 보호막처럼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두브로브니크 성벽과 미니어처 조각품들처럼 성안에 빽빽히 들어선 주황색 지붕들이 조화를 이룬 풍광은 더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예상보다 멀리 돌아가는 경로 탓에 해발 412미터 고도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걷기를 시작한 후 2시간 정도가 소요되어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올드타운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한다면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스르지산 정상을 나의 두 발로 걸어서 오른 후의 충만감은 예상보다 컸다. 해외출장을 나올 때마다 현지에서 등산이나 트레킹 코스를 찾아서 즐겨보자는 평소의 생각을 오랜만에 실천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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