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봉 주변은 하루종일 가을날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었다. 지난 주의 땡볕 더위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했다. 시원한 날씨 속에서 악우와 함께 줄을 묶는 등반이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취나드B'길 첫 피치를 지나서 오아시스에 도착하여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적당히 구름낀 하늘 아래 저멀리 천마지맥 위로 펼쳐지는 운해가 아스라히 보였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에서 운해를 본다는 건 고기압의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바위 표면의 상태도 양호해서 더울 때보다는 한결 밀리지 않았다. 평일에만 특별히 누릴 수 있는 인수봉 바윗길의 한적함과 조용함을 오롯히 만끽하면서 '패시'길 6피치 전체 루트를 기범씨와 둘이서 네 마디로 나누어 올랐다.
'패시'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3피치의 오버행 턱을 넘어가는 동작은 정말 특이했다. 다른 바윗길에서는 좀처럼 취하기 힘든 동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등반으로 유연하게 넘어서는 기범씨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인공으로 돌파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후등이지만 자유등반 방식으로 넘어섰다는 것에 조그만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지만, 정작 턱을 넘어선 직후에 크랙까지 진입하는 구간도 어려워서 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일 회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패시'길 등반 완료 후에는 '봔트'길 루트로 하강하여 오아시스로 돌아왔다.
점심 후에 '패시'길 우측에서 나란히 올라가는 '산천지'길 5피치 전체를 등반했다. '산천지'길은 2피치와 4피치의 페이스 구간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내 눈에는 도대체 홀드란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맨질맨질한 벽인데 기범씨는 잘도 올랐다. 특히, 4피치의 크럭스 구간에서 미세한 돌기 위에 오른발을 딛고 과감한 런지 동작으로 올라서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등반 내내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서 슬랩이나 페이스로 진입하는 구간이 까다롭고 긴장감이 높았다. '산천지'길을 완료한 후에는 '우정B'길 루트로 하강했다. 상쾌한 날씨 속에서 하룻 동안 난이도 높은 '패시'와 '산천지' 두 바윗길을 끝냈다는 만족감이 함께 했던 알찬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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