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천보산맥 종주산행 - 2016년 12월 31일

빌레이 2017. 1. 1. 07:10

산길을 길게 거닐면서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2016년 마지막 날의 송년 산행으로 천보산맥 종주산행을 계획한다. 20 킬로미터 이상의 걷기 좋은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는 천보산맥 능선길이다. 겨울이면 한두 차례씩 걸었던 포천의 왕방지맥에서 연결되는 천보산맥을 의정부시 근처에서부터 출발해 보기로 한다. 인터넷 지도를 통해서 들머리와 산길의 동선을 가늠해 본다. 전철 1호선 녹양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산 속에 가장 빨리 들어설 듯하다. 마침 토요일인 병신년 말일의 긴 산행을 꿈꾸며 이른 아침 집을 나선다. 산꾼의 겨울 산행은 문지방 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일단 집을 나오기만 하면 절반은 성공이다.


녹양역에 내려서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하동교를 건너간다. 도로 맞은편에서 곧장 천보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시작된다. 선명하고 친절한 이정표가 녹양역은 300 미터, 천보산 정상까지는 2.4 Km 거리임을 알려준다. 처음 가보는 산길의 들머리를 쉽게 찾은 기분이 남다르다. 지도를 보고 상상했던 이미지가 현실과 일치할 때 맛볼 수 있는 짜릿함이 느껴진다. 산행의 출발부터 예감이 좋고 마음이 즐겁다. 능선길로 오르는 중간에 눈 앞으로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만난다.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서니 시원한 조망이 열린다. 흐린 날씨지만 간간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는 가슴 속까지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는 듯하다. 주능선 위에 자리한 군부대와 불암사 갈림길에서 우측의 약수터 방향으로 올라간다. 작은 갈림길이 많아서 잠시 진행 방향을 헷갈렸지만 커다란 통신 안테나가 있는 정상이 선명하여 어렵지 않게 길을 찾는다. 다음 번에 온다면 불암사를 통과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능선길은 소풍가듯 부담 없이 걷기에 좋다. 소림사를 지나서 337 미터 높이의 천보산(마전동) 정상에 도착한다. 이 정상은 천보산 보루 중의 하나이다. 아차산과 사패산에서 보았던 고구려 시대의 보루들이 천보산맥의 조그만 봉우리들에도 설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정상을 지나서 어하고개 이정표를 보고 천보산맥 종주길을 따라서 계속 진행한다. 마전동 정상에서 어하고개까지는 8.8 Km 거리이다. 이 구간 중간에 있는 축석고개 이후부터는 이미 걸어 봤던 산길이라서 익숙하다. 탑고개, 백석이고개 등의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과 보루가 있는 봉우리들을 몇 개 지나쳐서 축석고개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난다. 예전부터 있었던 표지판과 최근에 설치한 듯한 이정표들이 섞여서 간간히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 있다. 양주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축석고개 이후의 구간은 낯설지 않다.


어하고개는 생태이동통로 공사 중에 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공사 구간을 가로질러 가서 맞은편 능선 위에서 따뜻한 점심 식사를 즐긴다. 곡기를 채우니 다시 힘이 나는 듯하여 회암고개를 향해 여유있는 발걸음을 옮긴다. 65사단과 석문이고개, 육각정이 있는 율정동 정상을 지나서 친숙한 회암고개에 도착한다. 기나긴 천보산맥 능선길에서 처음으로 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를 만난 것이다. 회암고개에도 생태이동통로가 건설되어 천보산맥길이 온전히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도로를 횡단하여 고도가 423 미터로 천보산맥에서 가장 높은 회암동의 정상까지 서서히 올라간다. 아담한 돌에 새겨진 정상석이 있는 회암동 정상에서 그동안 걸어온 산줄기를 굽어본다. 저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마전동 정상의 통신안테나부터 활처럼 휘어져 부드럽게 이어진 천보산맥의 능선길이 제법 웅장하다. 한걸음 한걸음 꾸준히 걷다보니 어느새 기나긴 거리를 이동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회암사로 하산하는 길에 붉은 노을이 선명한 석양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해는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간간히 갈라진 구름 사이로 펼쳐지는 빛내림 현상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회암사로 완전히 내려서지 않고 중간에 김삿갓 풍류길을 따른다. 108바위 앞의 쉼터에서 오늘의 산행을 정리해 본다. 석양을 즐기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108바위 앞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계곡을 따라서 마을로 내려간다. 김삿갓이 풍류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은 아름다운 계곡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설악산의 흔들바위를 축소해서 옮겨 놓은 듯한 바위에서 한 해의 힘들었던 순간들을 날려버리겠다는 퍼포먼스로 바위를 밀어내는 장난도 쳐보면서 편안했던 산행을 갈무리한다. 20 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의 산길을 걸었는데도 피곤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새해를 좀 더 건강하게 맞이할 것 같은 상쾌한 기운을 몸과 마음 속에 충전시킨 듯한 뿌듯함이 남는 송년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