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심야에 방영한 인문학 강의를 보게 되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대에는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습성 때문에 인터넷이나 TV를 보게 된다. 그날도 잠이 쉬이 오지 않아서 인문학 강의를 보게 되었는데 여느 강의들과는 달리 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강사가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어느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듯했다. 인간의 행복을 논하는 주제를 심리학자의 견지에서 들려주는 내용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행복의 방법론을 논하기 이전에 학자들은 "과연 인간이 행복해질 수는 있는 것인가?"라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부터 고민했다고 한다. 버트란트 러셀 같은 낙관론자는 인간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여 행복해지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다. 반대로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비관론자들은 인간은 절대로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관론자였던 프로이트도 인간이 완전한 행복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행복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대목보다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즐거움이나 재미를 찾는 행위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행위 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즐거움이나 재미를 쫒는 일은 삶에서 의미 없는 행위로 생각하기 쉽다. 의미 있는 일에서 재미나 즐거움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런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는 재미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고, 의미 있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학자들의 공신력 있는 연구 결과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의미론자가 되어 간다고 하는 것 또한 공감하는 바가 크다. 삶에서 유전과 환경적인 요인이 완전히 독립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즐거움을 찾기 위한 행위가 의미 있는 일이 된다면 그때 느끼는 행복감은 아주 클 것이다.
나의 지나온 삶에서 재미와 의미가 공존했던 것이 있었던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 보다는 즐거움과 재미를 먼저 찾았던 때가 더 많았었다는 반성을 절로 하게 된다.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많이 치우친 삶이었던 것 같다. 내 앞에 놓인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 순간 기쁨과 보람을 맛본 적도 가끔은 있었다. 재미와 자유를 만끽하는 삶을 꿈꾸며 산과 등반에 빠져 있는 순간에도 가끔은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되어 의미 있는 행위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재미와 의미는 나의 삶 속에서도 꾸준히 공생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재미를 쫒는 행위든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일이든 중요한 것은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만의 행복론은 이것이다. 즉, 생각 속에 있는 것을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생각과 실천의 간극을 줄이면 줄일수록 재미나 의미를 더 많이 찾을 수 있고, 그래야 생이 더욱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1. 몽블랑 아래의 발레블랑쉬 설원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코스믹릿지 알파인 등반에 나섰을 때... 행복했다.
2. 에귀투르 알파인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에서 따뜻한 커피 마시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을 때... 행복했다.
3. 모험적인 등반을 마치고 안전하게 귀환했을 때... 진한 행복감을 느꼈다.
4. 국내에서 충분한 준비를 해서 알프스의 알파인 지대에 첫 발을 내디뎌 글리세이딩을 처음으로 경험했을 때... 즐거웠다.
5. 벨기에의 작고 아담한 마을인 몽샤우에 찾아가 숲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봄을 만끽했을 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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