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인수A(변형)' - 2026년 3월 20일(금)

빌레이 2026. 3. 21. 09:11

올해 첫 인수봉 등반이다. 오랜만에 홍대클라이밍센터 회원들과 함께한다. 평일이라 한가한 도선사광장에 도착하여 내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곧이어 윤선생님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차로 다가가서 윤선생님과 기영형을 비롯한 회원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차에서 부동액이 뿜어져 나오는 게 눈에 띈다. 아무래도 라디에이터 고장으로 견인해서 수리를 맡겨야 할 상황인 듯하다. 윤선생님은 일단 등반에 나서고 차 문제는 하산하면서 알아보기로 결정하신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을 뒤로하고, 일행은 08시 30분 즈음에 인수봉을 향해 등산로에 들어선다.  

 

하루 종일 맑음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하루재를 넘어서면서 올려다 본 인수봉 정상부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올라오면서 만난 산악구조대원의 전언에 의하면, 며칠 전 산 아래에 비가 내릴 때 북한산 정상부엔 함박눈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북사면의 응달진 곳엔 군데군데 하얀 잔설이 선명히 보인다. 대슬랩 앞에서 장비를 착용하는 중에도 햇살은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일종의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그래도 일단 오아시스까지는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슬랩 우측에서 기영형의 든든한 빌레이를 받으며 바위에 붙는다. 기영형, 민지씨, 나, 이렇게 셋이서 단촐하게 한 팀을 이루었다.   

  

차가운 바위면을 움켜쥔 손가락의 감각이 무뎌지면 호호 불어가면서 1피치 50미터, 2피치 60미터로 오아시스에 닿으니 간간히 햇살이 비춰주고, 정상부의 구름도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우리팀은 '인수A' 변형 루트를 통해 정상까지 오르기로 했고, 윤선생님이 이끄시는 다른 7명은 '의대'길을 따라 귀바위 정상으로 향했다. 트래버스 구간에서는 민지씨를 두 번째 등반자로 교체하면서 우리팀은 안전한 가운데 아주 즐겁고 여유롭게 등반할 수 있었다.

 

영자크랙 위의 넓은 크랙 속에는 눈이 쌓여 있어서 우측의 곡선형 크랙을 따라 등반했다. 실질적인 등반이 끝나고, 평소 같으면 참기름바위를 거쳐 정상까지 걸어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구간이 눈길이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끝까지 조심하면서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아무도 없는 인수봉 정상에 올해 처음으로 발을 디딘 순간의 기쁨은 컸다. 비록 나에게는 그리 어려울 게 없는 익숙한 루트였으나, 녹록치 않은 기상 여건에서 첫 멀티피치라는 부담감을 안고 선등하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어느 때보다 안전에 각별히 신경썼던 때문인지 하산 후의 피로도는 다른 등반에 비해 상당히 높았다.       

▲ 08시 30분 즈음에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 하루재를 지나 올려다본 인수봉은 구름모자를 쓰고 있었다.
▲ 대슬랩 앞에 모여 수다 속에 장비를 착용하는 중... 서로 학연 지연이 얽힌 인맥 찾기 놀이에 즐거워하면서...내가 아침마다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목소리가 익숙한 이찌라님도 처음 만나고, 그녀의 짝꿍이 나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신기한 인연도 발견하는 등...ㅎㅎ.
▲ 우리팀은 대슬랩 우측에서 1피치 50미터를 올랐다. 사진 좌측에 민지씨가 라스트로 오르고 있고, 우측에 후등자 확보 중인 윤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 우리팀의 홍일점인 민지씨가 함께해서 등반이 한결 즐거웠다. 내 며느리와 동명인 민지씨의 짝꿍인 의범씨는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졸업생이라는 인연까지...
▲ 대슬랩 2피치. 완만한 슬랩 60미터를 진행하면 오아시스 의대길 확보점에 닿을 수 있다.
▲ 오아시스에도 잔설이 보였다.
▲ 크랙 아래로는 물이 줄줄 흐르고... '인수A' 루트는 귀바위 좌측 아래로 길게 뻗어내린 크랙을 따라 오른다.
▲ 오늘의 3피치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 중인 기영형. 그렇게 결연한 표정일 필요까지야..ㅋㅋ.
▲ '인수A' 루트는 크랙을 따라 쭉 진행해야 하는데, 변형길은 손홀드 양호한 구간으로 우회한다.
▲ 오늘의 4피치. 잠시 '궁형', '인덕' 루트와 중복되는 구간이다.
▲ 오늘의 5피치는 트래버스해서 슬랩에 붙는 구간으로 초보자는 앞뒤에서 동시에 확보를 봐줘야 한다. 이곳부터는 민지씨가 두 번째로 진행. 트래버스 직전의 민지씨와 기영형, 그 아래로 의대길 첫 피치 확보점에 매달린 윤선생님팀이 내려다보인다.
▲ 오늘의 6피치. 누룽지 슬랩이라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 기영형이 라스트로 6피치를 올라서고...
▲ 7피치는 두 차례의 크랙을 통과해야하는 구간이다. 첫 번째는 디에드르형 크랙이고 사진 상의 두번째 크랙은 촉스톤 형태의 크랙이다. 두 구간 모두 진행 방향 좌측으로 과감히 넘어서는 게 포인트다.
▲ 기영형이 7피치 첫 번째 크랙을 올라서서 짧은 오버행 촉스톤 구간으로 진입 중이다.
▲ 8피치는 영자크랙을 올라서서 소나무 아래의 곡선형형 크랙으로 올랐다. 사진 우측 아래의 크랙 속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 실질적인 등반이 끝나는 8피치 마지막 확보점.
▲ 평소엔 걸어갈 수 있는 구간이 눈길이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 암벽화 밑창은 눈길에선 아주 미끄럽다. 나도 방심하다가 이 구간에서 보기 좋게 한 번 미끄러졌다.
▲ 참기름바위 위까지 눈이 남아 있어서 끝까지 조심스러웠다.
▲ 민지씨가 마지막으로 참기름바위를 올라서는 중이다.
▲ 올해 처음으로 밟아본 인수봉 정상. 맞은편 만경대와 노적봉의 북사면이 하얗다.
▲ 우리 세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던 인수봉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한참을 쉬었다. 건너편 백운대와 염초릿지의 북사면도 하얀 잔설로 덮여있었다.
▲ 서면으로의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 베이스캠프인 대슬랩 아래로 내려가는 중.
▲ 하산해서 올려다본 인수봉 동면은 평화롭기 그지없고...
▲ 윤선생님팀도 모두들 안전하게 잘 마무리한 듯하여 감사한 마음이었다.
▲ 3월 23일(월) ~ 4월 5일(일). 이 기간 동안 북한산 바윗길 출입금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