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오월의 마지막 날, 안성의 큰누나네 집에서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어머니 생신 근처의 주말에 날을 잡아 우리 4남매의 가정이 모두 모이는 연례 행사이다. 오늘은 오후에 모이기로 하여 오전 시간엔 아내와 둘이서 누나네 집에서 가까운 금광호수 둘레길을 걸어보기로 하고, 교통정체를 피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청록파 시인 중의 한 분인 박두진 시인이 안성 태생이라서 '박두진문학길'로 명명된 둘레길을 걷는 시간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연세대 교수였던 박두진 시인의 대표작인 '해'는 그 대학의 밴드였던 '마그마'가 곡을 붙여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였고, 내가 대학 시절에 가장 많이 듣던 연세대의 대표적인 응원가였다.
금북정맥 탐방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조형미와 조망이 우수한 하늘전망대를 구경하고 해산정과 수석정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걸었다. 박두진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샅샅이 밟아 본 것이다. 해산정의 전망 좋은 벤치에서 아내와 함께 간식을 먹으며 한가롭고 고즈넉한 휴식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오늘처럼 푸르른 날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바탕을 둔 시를 썼던 '청록파'를 떠올리면서 오랜만에 문학적 사색에 잠길 수 있다는 게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 직후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도 순수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세계에 대한 소망을 노래한 박두진 선생의 시 '해'의 원문을 찾아서 여기에 옮겨본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러,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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