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이동으로 가는 경전철 안에서 영신이 형을 우연히 만났다. 10여 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 뛴 만남이었다. 형은 내가 클라이밍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전까지 숱한 산행을 함께 다녔던 산악회 선배이다. 릿지등반을 주로 다니던 그 산악회에서 형은 초대 산행대장이었고, 내가 그 뒤를 이어 받아 5년여 동안 봉사했었다. 나의 첫 염초, 숨은벽, 만경대 릿지 등반 때도 형이 이끌어 주셨다. 영신이 형과 함께 했던 뜻깊은 산행과 등반의 소중한 순간들은 나의 마음 속에 귀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반가운 해후에 기뻐하면서 서로의 근황을 주고 받은 끝에 형이 우리 동네로 이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 한 번 산에서 보기로 하고, 그 날은 서로의 일정 탓에 잠깐 동안의 만남을 뒤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오후에 이신부님과 만경대 릿지 등반을 다녀오면서 오늘 산행을 영신이 형과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곧장 전화를 했고,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을 했다. 가까이 사는 은경이도 합류하기로 했다. 오전 10시에 만난 우리 셋은 도란도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주고 받으면서 쌓인 회포를 풀었다. 바쁠 것 없는 한가로운 발걸음으로 칼바위 능선길을 걸었지만, 한 주간의 빡빡한 일정에 피로가 겹친 탓인지 내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칼바위 아래에서 정릉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진행 경로나 목적지가 정해진 산행은 아니었으므로 그다지 아쉬울 건 없었다.
산행하는 내내 우리 세 명 사이엔 엊그제 보고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일말의 어색함도 없었다.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는 속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만큼 우리가 산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많았다는 방증인 것이다. 함께 나눈 그 행복했던 순간들은 서로의 마음 속에 그리움으로 켜켜이 쌓여 각자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어제 만경대를 등반하면서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감행했던 영신이 형과의 첫 만경대 등반이 생각난 것처럼 우리들 모두는 살면서 문득문득 쌓인 그리움의 조각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박완서 선생은 단편소설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라고 하셨다. 영신이 형과 함께 한 오늘 우리들의 산행은 그리움이 축복임을 몸소 깨닫게 해준 뜻깊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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