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토요일 날씨가 등반 친화적이지 못하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낮부터 내린다는 비가 아침부터 흩날린다. 암벽등반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우이동에서 도봉산을 향해 오른다. 우산을 받쳐들고 원통사까지 오른 후 비를 피할 수 있는 법당 처마 밑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구름에 갇힌 원통사 주변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별 기대 없이 나선 산행이지만 등로 주변에 봄꽃들이 만발하여 기분은 한층 고조된다. 우이암 주변은 온통 진달래꽃 천지고 쓰러진 고목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는 새생명들을 보면서 캐나다 밴쿠버의 스탠리파크에서 보았던 자이언트세콰이어 숲이 오버랩된다. 생명의 자연적 섭리를 일깨운 소중한 순간이다.
운무 속에서 시야가 거의 없는 우이암을 등반 중인 클라이머들이 희미하게 포착된다. 물기 머금은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는 그들의 등반 열정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무모한 도전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도봉주릉에 올라선 후로는 능선길 좌우가 온통 진달래꽃으로 화사하게 물들어 있다. 지난 주에 햇빛에 밝게 빛나던 북한산 진달래능선의 그것들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이다. 물기 머금은 진달래꽃 무리들이 한층 더 싱그럽게 다가온다. 가파른 오르막이 많은 탓에 무릎 통증이 차장와 힘에 부쳤으나 세찬 바람에 나부끼는 운무 사이로 드러난 암봉들을 구경하는 맛에 원도봉의 산불감시초소까지 이어지는 도봉주릉을 완주하게 된다. 오랜만에 망월사를 거쳐 의정부로 하산길을 잡는다. 봄꽃의 향연 속인 망월사 계곡은 수채화로 그려진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돌아보니 예상보다 길게 7시간 동안 이어진 도봉산 봄꽃 산행이 더없는 선물이었다. 봄을 충분히 만끽한 하루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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