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건설현장에서 근무 중인 정우씨가 휴가를 나왔다. 빠듯한 국내 일정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인수봉 등반을 함께 하게 되었다. 구선생님은 감기 증세가 심하여 등반할 수 없는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나와서 정우씨를 비롯한 일행들과 잠시나마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도선사주차장 위의 데크는 평소에 민경씨와 함께 등반하는 분들까지 서로 인사가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물들었다. 하루재를 지나 나타난 인수봉의 전경 또한 화창한 날씨에 걸맞게 그 어느 때보다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해외에서 고생하느라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정우씨는 인수봉까지 접근하는 중에도 거친 숨을 몰아 쉴 정도로 힘겨운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해맑은 표정만은 여전했다.
정우씨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기범씨는 오늘의 환영등반을 위해 신경을 많이 기울인 눈치였다. 평일이라서 많은 악우들이 등반에 참여하지는 못하여 네 명만이 함께 줄을 묶을 수 있었다. 기범, 나, 민경, 정우 순서로 등반했다. 크로니길 1피치에서 시작하여 아미동길 변형 슬랩, 크로니길과 여정길을 넘나드는 슬랩과 크랙 구간을 거쳐 하늘길 마지막 피치까지 길게 이어지는 등반선을 따라 인수봉 정상에 다다랐다. 지난 주말에 내린 요란스런 눈비의 여파로 동남대침니엔 적잖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곳을 트래버스할 때는 작은 시냇물을 건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인수봉 주변의 북사면엔 엊그제 내린 춘설이 아직까지도 하얗게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4월 중순에 걸맞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오늘 날씨만은 등반하기에 더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발을 디딘 인수봉 정상에서의 늦은 점심시간은 달콤했다. 풍성한 먹거리에 기범씨표 에스프레소 커피가 어우러지니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식탁이 되었다. 뒷풀이 시간엔 퇴근한 은경이와 은숙씨가 합류하여 한층 더 흥겨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우씨가 통크게 쏜 소고기 구이와 일일 바텐더로 변신한 기범씨의 정성어린 하이볼이 곁들여지니 여느 잔칫상이 부럽지 않았다. 은숙씨의 이색적인 사우디아라비아 여행담과 정우씨의 생생한 이집트 생활기가 적절히 어우러진 우리들의 수다는 자연스레 해외 유명 등반지에서 악우들이 함께 뭉치자는 희망 섞인 약속으로 발전했다. 정우씨와는 건강한 몸으로 가을에 다시 만나서 등반할 것을 기약했다. 오랜만에 살아가는 재미를 톡톡히 실감할 수 있었던 하루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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