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에 대상포진과 파상풍 2차 예방접종을 맞은 후로 몸상태가 몹시 좋지 않은 한주간을 보냈다. 당연히 습도 높은 날씨에 이렇다할 등반욕구가 발동하지 않은 주말이 다가왔다. 때마침 금요일 오후에 기범씨가 인수봉에 함께 가자고 하여 부담 없이 따라 나설 수 있었다. 기범, 은경, 나, 이렇게 셋이서 인수봉에 가면 자연스레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하지만 캐리의 다음 순서인 '봔트'길을 오늘 오를 수는 없다. 기범씨가 손목 부상 중이고, 크랙 루트엔 물이 줄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전엔 동벽의 '비원'길을 3 피치로 끊어서 등반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 시간엔 '심우'길과 '벗'길에서 등반했다. 은경이가 문상 때문에 일찍 하산하고, 기범씨와 둘이서만 벗길 2피치까지 등반하고 하산할 때는 인수봉 전체가 고요했다. 습기 머금은 슬랩이 미끄러워 벗길의 크럭스 구간에서는 여전히 헤맸으나, 심우길의 사선크랙 구간에서는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진 느낌의 동작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인수봉에서 모처럼만에 여유로운 등반을 즐겼다는 만족감이 남았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내려올 때는 등반용 헬맷을 착용한 채 기범씨의 스쿠터 뒷자석에 탔었다. 바람을 가르는 시원함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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