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후감] 다와다 요코의 장편소설 <용의자의 야간열차>

빌레이 2020. 11. 29. 18:41

나의 주말 시간은 산책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산책은 '산과 책'을 의미한다. 토요일인 어제는 북한산 등산을 했고, 오늘 하루는 <용의자의 야간열차>라는 책을 읽었다. 지은이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언어의 유희를 즐긴다고 한다. '산책'은 내가 다와다 요코의 흉내를 내어 즉흥적으로 만들어 본 언어 유희의 한글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와다 요코의 언어 유희는 이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용의자의 야간열차>는 요즘 방송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로 말하자면 여러 면에서 "신박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2인칭 '당신'인데, 그 당신이 독자인 내가 되어 전지적 작가 시점 속의 주인공이 독자 자신이 되는 듯한 특이한 서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당신은 야간열차를 타고 파리, 그라츠, 자그레브, 베오그라드, 베이징, 이르쿠츠크, 하바롭스크, 빈, 바젤,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뭄바이 등 유럽과 아시아의 도시들을 여행한다. 책을 읽는 내내 유럽에서 기차여행을 다니던 때의 여러 가지 추억들이 떠올라 아련한 향수에 젖는 순간이 많았다. 오래 전 오스트리아 출장 당시 세미나 일정을 마치고 야간열차의 침대칸에 올라 알프스 트레킹 겸 스위스 여행을 위해 그라츠에서 취리히로 이동했던 기억은 소설 속의 분위기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그런지 특별히 자주 소환되었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우리네 삶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동반될 수 밖에 없는 해방감과 불안감의 경계를 오가는 체험을 박진감 있게 전해준다. 재기 발랄한 문장들 속에서 문학적 깊이가 느껴지는 요즘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