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내가 학창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운동 종목은 야구였다. 대학생 시절에도 같은 학과 친구들과 야구팀을 만들어서 다른 학교 팀들과 친선경기를 자주 가졌을 정도로 많이 좋아했었다. 키는 작았지만 포지션은 투수와 유격수를 오갔고, 3번 타자에 팀의 주장을 맡았었다. 야구를 그런대로 곧잘 해서 친구들은 나를 '독고탁'이라 불렀다. 이른바 대학시절 나의 첫 별명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야구팀 친구들 중에서 제일 키가 작았던 나에 대한 놀림과 보기보다 야구를 꽤 잘 한다는 애정어린 마음이 혼재되어 있었을테지만,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었다. 실제 만화 속의 독고탁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키가 유난히 작지만 아주 날쌔서 도루를 잘 하고 자신만이 던질 수 있는 마구를 간직한 투수이다. 당시엔 대학생들 사이에 만화가 유행했었는데 이현세의 <외인구단>과 함께 이상무의 <달려라 꼴찌>가 대표적인 야구 만화였다. 이현세 만화의 주인공은 '설까치'와 '엄지'였고, 이상무 만화의 주인공은 '독고탁'과 '슬기'였다.
내 별명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이상무 화백의 만화를 참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때에 월간잡지인 '소년중앙'에 연재되었던 <우정의 마운드>라는 제목의 야구 만화는 친구들과 돌려가면서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았었다. 그때 본 독고탁의 멋진 활약상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상무 화백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최근에 복간된 <달려라 꼴찌> 6권 세트를 지난 주말에 다시 감상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소노 아야꼬의 책 <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에서 저자가 아플 때 만화책을 들고 침대 속으로 빠져든다는 대목을 보고 즉흥적으로 구입을 결정했던 것이 바로 <달려라 꼴찌>였다. 소노 아야꼬의 흉내를 내보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산에 가지 못한 주말 시간을 <달려라 꼴찌>와 함께 보냈다. 독고탁과 그의 동생 독고승, 탁의 친구 봉구와 슬기,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추억 속에 젖어들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미 소장하고 있는 이상무 화백의 다른 작품인 <비둘기 합창>과 함께 가끔은 다시 손에 들게 될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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