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후감] 메이브 빈치 장편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 (A week in winter)>

빌레이 2018. 12. 23. 07:50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읽을 요량으로 몇 권의 책을 사두었다. 종강을 하고 기말고사 출제와 채점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피로가 쌓인다. 성적 처리까지 마무리하고 나면 후련한 마음과 함께 긴장감이 풀리면서 몸은 착 가라앉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쉬고만 싶을 때 눈에 들어온 책이 아일랜드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메이브 빈치의 장편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이다. 지난 여름에 아일랜드 출장을 다녀온 후로 그 나라가 한결 더 좋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시기에 찾은 아일랜드의 여름날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아일랜드 여행의 기억을 붙잡아 두고 싶어서 구매해 두었던 책이 바로 <그 겨울의 일주일>이다.


이렇게 독특하고 멋진 구성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 소설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461 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단편소설처럼 경쾌하고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이지만 다 읽고나니 여러 인물들의 삶이 얽히고 섥히는 대하소설을 읽은 듯한 감동과 뿌듯함이 남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지극히 평범한 삶이 나름대로의 역사를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주인공인 치키스타는 아일랜드에 여행자로 온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치키는 그 남자를 따라 나서기로 하고 아일랜드를 떠나 뉴욕 생활을 하게된다. 몇 년 후 그녀는 아일랜드 서부의 고향 마을인 스토니브릿지에 돌아와 해안절벽 위의 낡은 저택인 스톤하우스를 호텔로 재건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의 목차는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모두 사람 이름이다. 치키, 리거, 올라, 위니, 존, 헨리와 니콜라, 안데르스, 월 부부, 넬 하우, 프리다, 이렇게 10명으로 대표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새롭게 문을 연 호텔 스톤하우스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다. 치키, 올라, 리거, 이 세 사람은 호텔 운영자이고 나머지 일곱 명은 개장 이후 첫 손님들로 일주일 동안의 겨울 휴가를 스톤하우스에서 함께 보내게 된 사람들이다. 각 장마다 제목이 곧 주인공이기 때문에 10편의 단편소설을 연작으로 묶어놓은 듯하여 장별로 읽는 재미와 특색이 각별하다. 한 장에서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다른 장에서는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가능했다. 여타의 평면적인 전지적 작가시점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법이 매우 재치있고 독창적이다.


소설 속의 대부분이 해피엔딩을 예감하게 만드는 이야기지만 평생 고립된 삶을 살았던 '넬 하우' 부분을 읽고나면 가슴이 한없이 답답해지는 느낌도 받는다. 소설이지만 공상적인 요소가 전혀 없고, 부자연스런 허위나 가식이 감지되지 않아서 언뜻 보면 잔잔하게 가슴을 적셔주는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의 작품이다. 리얼리티 문학의 한 전형을 보는 듯한 감흥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지난 여름에 다녀온 아일랜드의 인상이 뇌리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더블린의 리피강, 골웨이, 모허절벽 등과 같이 직접 체험했던 공간이 소설 속에 나오면 다시금 지난 여름의 아일랜드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겼다. 스톤하우스 부근의 해안을 산책하는 장면에서는 더블린 근교인 호쓰, 말라하이드, 그레이스톤스, 브레이 등지를 트레킹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는 나도 이미 스톤하우스의 손님이 되어 가슴 따뜻하고 심신이 건강해진 일주일 간의 겨울 휴가를 즐기고 온 기분이 들었다. 정말 좋은 작품이어서 기회가 닿으면 영문본까지 구매해서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