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후감]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

빌레이 2017. 5. 22. 14:57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한다. 특별히 좋은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이 말이 더욱더 적절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좋은 책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화려하고 자극적이면서 맛있는 음식이 반드시 몸에 좋은 것은 아니다. 이른바 건강식을 맛있게 먹었을 때 우리는 몸에 좋은 양식을 먹었다는 만족감이 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는 잘 발효된 청국장이나 된장찌개처럼 맛깔스러우면서도 몸에 좋은 건강식 같은 책이다. 적어도 요즈음의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요 며칠 동안 까닭 모를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의무감으로 감내해야 하는 업무와 대인관계 때문에 나의 삶이 자꾸만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덩달아서 몸도 여기 저기가 아팠다. 정신 건강부터 챙겨보자는 생각에서 집어든 책이 <스토너>이다. 이 책을 정독하고 난 지금은 마음의 양식을 채웠다는 만족감과 함께 정신이 조금은 맑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존 윌리엄스가 쓴 <스토너>는 미국 미주리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인 주인공 스토너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애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주인공의 삶에서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스토너와 같은 직업을 가진 탓인지 대학 교수인 주인공의 익숙한 일상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스토너의 삶을 보면서 교육자와 학자로서의 본분을 어떻게 지켜나가야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부끄러움 가득한 모습의 나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이미지의 미국 소설이 이렇듯 큰 감흥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나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같은 명작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이 책을 앞으로도 가끔은 다시 펼쳐볼 듯한 예감이다. 밑줄 그으며 읽고 싶은 진중한 내용이 가득한 소설 속의 구절 몇 개를 떠올려 본다.


"스토너가 지금까지 맡았던 최고의 강의 중 하나였다. 거의 처음부터 주제에 함축된 의미들이 학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학생들 모두 자신이 다루는 주제가 훨씬 더 커다란 주제의 핵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 주제를 연구하다 보면 어디에 가 닿을지 궁금하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 때 맛볼 수 있는 발견의 기쁨을 얻었다."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좋은 강의의 표상을 이렇듯 명료하게 깨닫게 해 준 장면을 나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게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세월의 흐름과 변화된 환경에 따른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생각들을 멋지게 표현한 대목이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소설의 끝 부분이다. 스토너의 마지막 모습을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