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란 부제가 붙은 폴 칼라니티의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를 감명 깊게 읽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젊은 사람의 자세가 이토록 의연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엘리트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듯이 보였던 폴의 삶은 의학전문대학원 레지던트 말년에 폐암 말기 선고를 받는 것으로 급격하게 흔들린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시점에서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그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폴은 의사로서, 환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의연하게 감당해 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고 아름다운 글로 기록하여 책으로 남긴다.
그 짧은 인생 동안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다시 스탠퍼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신경외과 의사의 길로 들어선다. 인생의 의미와 죽음의 현상을 이보다 더 완성도 있게 연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이력은 없을 것이다. 문학을 통한 죽음의 간접적 체험과 의학을 통한 죽음의 실체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경력인 것이다. 그러던 그가 신경외과 수련의 생활 6년차에 폐암 선고를 받고, 마지막 레지던트 7년차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던 중 2015년 봄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집필 도중 저자인 폴이 죽었기 때문에 미완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쓴 에필로그가 추가됨으로써 아주 완성도 높은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폴이 장례를 치른 후에 그의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가 쓴 에필로그 역시 명작의 대단원 같은 무게감과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한낮의 무더위와 열대야로 지친 요즘의 일상에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을 읽었다는 감사함이 남는다. 폴이 남긴 글귀 중에서는 다음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금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에필로그에 있는 폴의 아내 루시가 쓴 문구 몇 개를 옮겨본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이 책에서 폴은 의사이기도 하고 환자이기도 하며, 의사 겸 환자 관계 속에 놓여 있기도 하다."
"내게 가장 그리운 폴은 연애하기 시작했을 때의 팔팔하고 눈부셨던 그 남자가 아니다. 뭔가에 집중하는 아름다운 남자였던 투병 말기의 폴, 이 책을 쓴 폴, 병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그 남자가 그립다."
"우리는 서서히 걸음을 옮겨 영원한 산의 정상에 오르리라. 그곳의 바람은 시원하고, 풍경은 장엄하리라."
에이브러험 버기즈가 추천사에 쓴 다음 글귀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많은 시간을 손안에서 윙윙거리는 사각형 물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덧없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며 진정한 대화는 찾기 어려워진 이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죽었지만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게 된 내 젊은 친구와 대화를 나눠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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