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그 너머를 질문하다'란 부제가 붙어 있는 교양 만화책인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재미 있게 읽었다.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젊은 시절에 포퍼와 쿤의 책을 읽었던 희미한 기억은 있다. 하지만 이 과학철학자들이 논하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거의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다. 과학 밖에서 과학을 논하는 것이 쓸 데 없는 논쟁이라는 생각에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책이 소개되었을 때 다시금 과학철학을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구매해 두었다가 이번 제주도 출장길에 짬짬히 읽게 되었다.
요즘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창시하여 과학의 역사를 혁명과 정상과학의 시기로 구분한 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동료 학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논쟁을 겪으면서 학문의 지평을 넓혀가는 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과학의 역사 속에서는 천재들만이 기록될 것이지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상과학의 시기를 분류함으로써 평범한 과학자들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쿤의 주장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구석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과학적 사고체계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열린 지성의 토대 위에 물질관과 세계관을 습득하는 것이다"라는 이정모 씨의 추천사 한 구절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은 토마스 사무엘 쿤의 삶과 연구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쿤의 연구 내용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의 미국 명문 대학들에서 이루어진 학문적 결과와 연구 분위기가 결코 저절로 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상대적으로 천박해진 듯한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학문적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장인 '쿤을 넘어서 포스트 정상과학으로'에 담겨있다. 현대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대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낸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언제고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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