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로 가는 길>은 그리스를 여행할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란 생각이다. 그리스의 여행지를 소개한 안내서는 많지만 정작 그리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 해놓은 책은 드문 것 같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지역의 문화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을 한 두 권쯤은 읽고 가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번 그리스 여행에는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 여행을 알차게 다녀오기 위해서 필요한 좋은 습성인데 나태함 때문에 준비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특히 크레타 섬을 다녀온 후로 이러한 준비 소홀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테네에서의 숙소는 한인 민박이었다. 그리스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간직하고 계신 주인 내외분의 세심한 배려로 알찬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민박집에는 그리스 여행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자들을 여느 호텔 못지 않게 비치해 놓았다. 그 중에서 판매용으로 전시해 놓은 <아테네로 가는 길>이 내 눈에 띄었다. 책을 간단히 훑어보고 몇 장을 읽어본 후 곧바로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유적을 돌아보면서 품게된 궁금증을 단숨에 해결해 주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저자인 한태규 씨는 2001년부터 그리스 대사를 지내면서 그리스의 문화와 신화에 담긴 민주주의 정신과 자유의 가치에 매획되어 이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
역사 이야기, 신화 이야기, 철학 이야기, 정치 이야기, 다시 만난 제우스, 이렇게 5부로 구성된 <아테네로 가는 길>을 다 읽고 나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의 편린들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 문명의 발상지를 이집트라 하지 않고 그리스라고 하는 까닭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이집트의 유적이 대부분 왕의 무덤과 신전인 반면, 야외 극장, 스타디움, 아고라 등의 그리스 유적은 민중의 문화라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는 저자의 사유는 신선하다. 그리스의 정식 국명인 '헬레닉 공화국'의 유래와 다소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명칭으로 로마 사람들이 후에 붙인 '그리스'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현 상태를 해석하는 대목은 저자의 직업이 외교관이라는 전문성을 엿보게 한다.
결혼반지의 기원이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용서해주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의 결과로 헤파이토스를 시켜서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했던 바윗돌을 넣은 반지를 만든 것이었음을 다시금 연상시켜 주는 것처럼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리스 문화를 책 속에서는 재미 있게 만날 수 있다. 아이게우스가 아들이 죽었다고 낙심하여 몸을 던진 바다라고 해서 에게해로 불린다는 등과 같은 명칭의 기원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 이야기를 기술 해놓은 부분에서는 대학 시절 탐독했던 서양 철학 서적들을 다시 만나는 듯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했다. 현대 미국의 공화당 정부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시카고 대학 교수였던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들이고, 스트라우스 교수의 전공이 고대 그리스 정치 철학이면서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는 사실은 21세기 미국을 움직이는 바탕에 플라톤이 있음을 설명한 부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스의 문명은 기원후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를 저자 나름대로 해석한 대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우수한 민족인데 오늘날에는 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그리스 사람들은 그 당시의 그리스 사람들과 다른 유전자를 가졌을 거라는 그리스인들의 대답을 소개한 부분도 재미있다. 비록 그리스에 가기 전에 읽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지만, 다녀온 후에 읽은 <아테네로 가는 길>은 행복했던 여정을 기분 좋게 회상하기에 충분히 알찬 내용이었다.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알기 쉽고 재미 있게 풀어 놓은 책이어서 그리스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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