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국립등산학교 인공암벽장 - 2024년 6월 15일(토)

빌레이 2024. 6. 18. 09:59

울산바위의 빼어난 절경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북설악 신선대를 다녀온 후, 암벽등반 승인 건에 대한 체크인 요청 문자에 응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이동했다. 암벽 이용 당일에 등반 해당 지역에 있어야 체크인 버튼이 활성화 된다는 안내문자 탓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권역 내에서 휴대폰 위치추적 시스템을 활성화 시켜야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데, 이 절차 또한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산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을 즐기고 오로지 등반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휴대폰 전원을 꺼 놓는 습성이 있는 나 같은 부류들에겐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심한 복수를 하는 셈 치고 전화 상으로 비 때문에 등반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공단 직원들에게 체크인을 요청했다. 오후 4시 이후에 활성화 된다는 체크아웃 과정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립공원공단은 설악산에 들고 나는 것을 호텔 체크인, 체크아웃 하는 정도로 단순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국립공원 내의 암벽을 이용할 때 현재의 불합리한 '암벽이용 신청 서비스' 시스템에 고분고분 응할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클라이머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사무실 내에서 편안히 감시하겠다는 국립공원공단 측의 이러한 발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설악산 같은 대자연의 품에 안길 땐 문명의 이기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 것이다. 그런 소중한 가치들은 안중에도 없는 탁상행정의 전형을 본 듯하여 씁쓸했다. 이러다간 국민들의 프라이버시 침해 여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설악산의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마다 CCTV가 설치되어 모든 등산객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시당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국공은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에 집중하고 싶은 클라이머들을 불편하게 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출입금지 관리공단'이자 자연을 보호하기보다는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들만의 안위를 우선시 하는 걸로 보이는 국립공원공단은 하루빨리 그 오명을 벗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설악동 B지구와 C지구 사이에 건설 중인 관광용 구름다리와 육교형 철제 데크길은 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환경파괴의 또다른 현장을 목격한 나의 분노 지수는 높아졌다. 관청의 주도로 진행된 공사가 분명할 텐데 세금 낭비가 이만저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락가락한 날씨에 예정됐던 등반도 못하고 이래저래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으나, 산림청 산하의 국립등산학교 인공암벽장에서 보낸 오후 시간과 속초중앙시장에서 포장해온 닭강정과 특대 사이즈의 자연산 광어회를 안주 삼아 악우들과 함께 숙소에서 보낸 저녁 시간의 술자리가 그나마 큰 위로를 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