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더위 속을 견뎌내야 하는 요즘이다. 모든 것에 의욕이 없어지는 날씨를 탓하며 게으름을 피우기 좋은 시절이기도 하다. 탁트인 해변과 시원한 계곡을 찾고 싶다지만 북적대는 피서 인파에 매몰되기 싫은 나는 그럴 생각일랑 거둬들인지 오래다. 대신에 우리집에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인 식탁 위에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조용한 피아노 연주곡을 배경음악 삼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 나의 더위 대처법이다. 재미 있는 책 속에 빠져들다 보면 덥다는 느낌은 아예 들지 않는다. 산속 깊은 곳의 자연이 담고 있는 신선함을 오롯히 느낄 수 있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육체적 감각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까지도 맑아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미국 작가인 포리스트 카터가 지은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원제는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다. 의역한 번역본의 제목이 다소 감성적이긴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책을 판매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제목이나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이 책은 주인공 소년인 작은나무(Little Tree)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품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얘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 동부의 애팔레치아 산맥 인근에 거주했던 인디언 부족인 체로키족의 후예였던 이들이 산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과 교감하면서 함께 생활하는 소소한 이야기는 사랑과 아름다움 그 자체다. 에덴동산의 한 전형을 본 듯한 인상도 들었다.
스토리 전개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여타의 소설과는 다르게 이 책은 내용이 알차고 교훈적인 것이 많아서 책장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정독하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기억해두고 싶은 장면에서는 색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읽어 내려갔다. 소설적 재미도 충분해서 자연스레 미소짓거나 소리내어 웃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 여러 곳 나온다. 물론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되는 아련하고 감동적인 장면들도 많다. 삼복 더위의 한가운데에서 이 책을 만났다는 것이 더없는 기쁨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작은나무가 할아버지, 할머니, 동물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숲속의 오두막에서 나도 같이 생활하고 온 듯한 환상 때문인지 무더위는 느낄 겨를도 없었다. 책 속에서 밑줄 그었던 부분 중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 하지만 아마 산만은 언제나 변함없을 거다. 너도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니 다행이고. 우리는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며 억지를 부려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나도 링거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떡갈나무 밑에 잠든 그를 떠났다. 나는 가슴이 뻥 뚤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네 기분이 어떤지 잘 안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 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링거는 오두막에서 함께 살던 여러 개 중의 한 마리이다.
"더불어 나무들은 임신한 여자처럼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오르다가 드디어 가지 끝에 일제히 새싹을 터트리게 된다. ..... 자연은 살아있고 출산의 진통을 겪는다. 산에서 봄을 맞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의 작별인사....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나무야, 다음 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할머니가 작별인사로 남긴 쪽지....
"작은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 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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