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암릉 등반 - 2010년 10월 1일

빌레이 2010. 10. 2. 09:36

 

 

내가 등산학교를 졸업한 후로 가장 하고 싶었던 등반 대상지는 설악산 암릉길들이다.

용아장성릉을 안내 산악회 따라 가본 적은 있지만, 설악의 다른 암릉길들은 책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천화대 리지, 흑범길, 염라길, 칠형제봉 리지, 몽유도원도 리지, 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 등등...

그 이름도 아름다운 암릉길을 오르며 설악의 속살을 느끼면서 그 깊은 품에 안기고 싶었다.

암장에서의 연습보다 암릉길 등반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추석 연휴 때의 월출산 사자봉 리지 등반의 감동이 여전한 가운데 설악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을 계획한다.

설악에서 산우들과 오붓하고 안전하게 암릉길 등반을 즐기고 싶어 어렵더라도 평일을 택했다.

등산학교 동기들이자 오랜 친구들인 정신, 인천, 은경이가 바쁜 중에도 휴가를 내고 등반에 참여했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설악의 암릉길 등반지로 정신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생각해오던 곳이어서 더욱 각별했다.

 

구월의 마지막 밤, 정신이의 차에 네 친구가 동승하여 설악으로 향한다.

별빛 선명한 설악동의 오토캠핑장에 여장을 풀고 시월의 첫날을 맞이한다. 벌써 겨울 분위기 나는 듯 쌀쌀하다.

비몽사몽 간에 뒤척이던 중에도 잠은 들었던지 개운한 기분으로 깨어나 누룽지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정신이가 예약해 놓은 암벽등반 허가서를 매표소 지나 받아들고 비룡교를 건넌 시각은 일곱 시 사십 분 경이다.

소토왕골로 접어들어 잠시 헤맨 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출발 지점을 찾아 장비를 착용한다.

 

사자봉 리지 등반 경험이 있는 정신이가 주로 선등을 맡고, 루트 탐색과 등반 시스템을 담당할 쎄컨을 내가 맡기로 한다.

다음으로 은경이가 뒤를 따르고, 인천이가 후등을 하며 설거지를 하기로 하고 힘차게 출발한다.

네 사람 모두 권등을 졸업했기 때문인지 장비 사용이나 등반 시스템 운용에 대한 호흡이 물 흐르듯 매끄럽다.

월출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간 크기 프렌드 세 개를 준비한 것이 선등하는 정신이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블랙다이아몬드 사의 프랜드는 정말 잘 만들어진 장비이다. 다른 프랜드에 비해 설치와 회수가 매우 편리했다.

 

소토왕골과 권금성을 오른쪽에 두고 정상인 노적봉을 바라보며 오르는 암릉길은 정말 재미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울산바위가 아침 햇살 속에 빛나고 있고 좌우의 직벽과 틈새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청아했다.

기술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곳은 없었다. 네 사람 모두 원만하게 지체하는 시간 없이 잘 올랐다.

노적봉 바로 아래 8 피치에 위치한 직벽과 오버행 구간이 선등자인 정신에게 좀 까다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홀드가 확실하고 돌기가 살아 있는 바위 표면이 비교적 잘 붙기 때문에 그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노적봉 정상에 오르니 속초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웅장한 토왕성 폭포가 전모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럴 땐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다. 마냥 좋다. 우리 네 사람의 얼굴엔 안전하게 오른 만족감과 감사함이 넘실대고 있었다.

아무리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댄다고 해도 이 아름다운 풍광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외설악의 화려함 속으로 끌려들어왔던 것이다. 한 편의 시가 떠오를 새도 없이 풍광에 취한다.

최상의 풍광으로 둘러싸인 좁은 정상에서 네 사람이 둘러 앉아 도시락 까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토왕성 폭포를 마주보며 내려서는 하산길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다운 클라이밍 지역의 낙석을 조심해야 한다.     

이 길은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의 풍광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여유롭게 사진 찍으며 내려가는 길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다운 클라이밍을 하다보니 하강고리가 발견되고, 여기에서 25 미터 정도 자일 하강한다.

노적봉 직벽을 오른쪽에 두고 소토왕골로 하산하다 계곡에서 세족하니 모든 등반이 마무리된다.

우리끼리 설악에서 처음으로 행한 암릉길 등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이 매우 만족스럽다.

정신, 인천, 은경, 오랜 친구들이 함께 해서 만점짜리 등반이 이루어졌다. 사랑스런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1. 토왕성 폭포를 보면서 하산하는 길은 최고의 풍광을 선물한다...

 

 2. 등반 초반 약간은 긴장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생긴다...

 

 3. 가장 난이도 높은 8 피치 직벽과 약간의 오버행 구간... 비교적 홀드가 양호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4. 정신이가 선등, 내가 쎄컨을 맡았다... 은경이가 나의 뒷태를 똑딱이로 찍은 컷...ㅎㅎ..

 

 5. 정신이의 간접 빌레이로 오르는 은경... 선등을 맡은 정신이의 수고가 남달랐다..

 

 6. 마지막 피치에서의 정신이와 인천이... 우리가 걸어온 비룡교와 암릉길이 한 눈에 보인다...

 

 7. 오름짓을 마치고 노적봉 정상에서 한가한 시간을 갖는다... C-PL 필터를 끼워 촬영해보았다..

 

 8. 다운 클라이밍 구간은 주의를 요하지만 멋진 풍광과 함께 재미 있는 바윗길이다...

 

 9. 토왕성 폭포와 토왕골 물줄기를 낱낱이 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터... 내려보면 까마득한 절벽...ㅎㅎ..

 

 10. 정신이의 사진사 기질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ㅎㅎ..

 

 11. 이 장면을 촬영하고 싶어 조금 기다린 뒤에 하산 했다...ㅎㅎ

 

 12. 토왕폭을 배경으로 펼쳐진 절벽미를 아무리 보고 있어도 뉘가 나지 않는다...

 

 13. 날등에 서 있는 인천이와 정신이의 모습이 멋지다...

 

 14. 조심스럽게 하산하고 있는 인천이와 은경이... 성질 급한 정신이는 벌싸 가고...ㅎㅎ..

 

 15.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촬영을 아무리 많이해도 아쉽기만한 풍경...

 

 16. 하강고리가 발견되면 25 미터 자일 하강...

 

 17. 소토왕골 계곡에서 등목하고 세족하는 두 넘들... 오른쪽 직벽 곳곳에 암벽 루트가 있다..

 

 18. 등반을 함께한 우리는 하나...

 

 19. 기념 촬영을 아무리해도 아쉽기만한 풍경...

 

20. 정신-주성-은경-인천... 넷이 하나 되어 오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영원히 잊히지 않을 2010년 가을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