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벽 등반 하는 이들을 처음으로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월출산에서의 일이다. 그 때 나는 보이스카우트 대원이었고, 여름방학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야영훈련 중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솥단지를 새끼줄에 묶어 등에 지고 올랐던 기억이 난다. 구름다리를 향해서 오르던 길 중간에 대학생 형들로 보이는 이들의 암벽 등반 모습을 보고 오금이 저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어렵지 않은 형제봉 암릉길을 그들이 오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삼십여년이 흘렀다. 그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같이 했던 정신이와 월출산 사자봉 암릉길을 등반했다. <얄개바위>의 저자 주영과 그의 친구 정호진이 짧은 휴가 기간을 맞춰 요세미티 앨캡을 오르던 장면이 생각난다. 우리도 그들처럼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고향집 방문 기간 동안 틈을 내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추석을 하루 앞둔 9월 20일 새벽 다섯 시 반에 집을 나선다.
삼십 년 전에는 집에서 아침 먹고 출발해서 월출산 야영장에 도착하면 석양이 질 정도로 교통이 불편했었다. 지금은 고향집에서 자동차로 30 분 내에 월출산 등로 입구에 이를 수 있다. 집에서 월출산 가는 길 중간에 정신이의 고향집이 있다. 내 차에 동승하여 월출산 입구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 정도의 시간이다. 바람 폭포에서 목을 축이고 조금 내려와 사자봉 암릉길 초입에 이르니 해가 떠오른다.
바람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오른 쪽에 형제봉 리지와 그루터기의 혼 리지길이 자리하고, 왼쪽 편에 사자봉 리지길이 있다. 바람 폭포에서 책바위를 따라 펼쳐진 암릉길이다. 정신이도 나도 사자봉 리지는 처음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끼리 시도해보는 첫 등반이기도 하다. 책에서 본 정보를 여러 번 읽고 숙지했지만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처음엔 서로 지그재그 식으로 선등을 맡는 격시등반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첫 피치를 먼저 오르기로 한 내가 붙어보니 잘 안 되고, 정신이는 비교적 쉽게 올랐다. 첫 피치를 후등으로 오를 때도 세 번 만에 겨우 오르다 보니 나는 기진맥진 힘이 빠져버렸다. 지난 저녁 광주에서 친구 부부와 놀다오고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잔 까닭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구간을 정신이가 선등으로 오르고 나는 편하게 후등을 맡았다.
사자봉 암릉길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발길 닿는 곳마다 미끌리는 침니 구간도 있고, 프렌드를 세 개나 설치해야 하는 크랙 구간도 있었다. 8 피치에 위치한 페이스 구간은 심리적 부담이 가장 컸다. 아래로 백여 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직벽 위의 날등과 트레버스 구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섯 개의 볼트에 걸려 있는 슬링을 이용하여 인공 등반을 함으로써 기술적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고도감 때문인지 슬링을 딛고 일어서는 다리가 나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전체 10 피치로 이루어진 등반은 시종일관 우리 둘을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정상에 오른 후의 만족감은 컸다. 서울엔 폭우가 쏟아진 그 시각, 월출산 사자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황홀했다. 맞은 편 형제봉과 장군봉 암릉은 설악의 천화대 못지 않은 위용을 과시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그림 같은 뭉개구름,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 들녘은 우리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하강은 두 번에 나누어서 했다. 60 미터 자일 한 동으로 30 미터씩 끊어서 할 수 있도록 하강 고리가 설치되어 있다. 무사히 하강을 완료 한 후 정신이와 나는 서로가 대견해서 뿌듯한 포옹을 나누었다. 풍경이 아주 좋아 사진 촬영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까닭에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 마음의 산으로 자리하고 있는 월출산에서 마음 통하는 삼십년 지기 친구와 함께 우리끼리의 겁 없는 등반을 즐겼다는 것이 한 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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