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베로나 아레나에서의 오페라 감상

빌레이 2015. 7. 20. 01:59

베로나의 명물 중 하나는 아레나(Arena di Verona)에서 6월 말부터 9월까지 펼쳐지는 한여름밤의 오페라 공연이다. 매일 같은 오페라가 열리는 것은 아니고 미리 계획된 일정에 따라 다른 공연이 열린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http://www.arena.it/)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여름의 오페라 페스티발에서는 Aida, Nabucco, Tosca, Don Giobanni 등이 일정에 보인다. 나는 7월 14일 밤 9시부터 시작된 베르디의 오페라 Aida를 감상했다. 아이다의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고, 베르디의 음악 또한 낯익은 것이 많아서 오페라 가수들의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무대의 웅장함도 큰 볼거리였지만 무엇보다 마이크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가수들의 육성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만으로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경기장 전체를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차게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페라 가수들의 성량도 풍부했지만 마이크 시설이 없었던 로마시대에 세워진 아레나의 특별한 건축 설계 기술이 한 몫 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베로나의 아레나는 로마시대인 서기 1세기 경에 지어졌으니 그 자체로 2천 년이 거의 다 된 문화유적이다. 이렇게 오래된 건물이 오늘날에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멋진 일이다. 몇 백년 되지도 않은 유물들이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사람들의 눈길만을 허락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마치 박제된 동물 표본과도 같은 것이다. 반면 현재 진행형으로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베로나의 아레나는 마치 살아 있는 공룡을 보는 듯한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객석 중에서 무대와 가장 먼 곳에 앉았음에도 오페라의 웅장함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아레나 곳곳을 둘러보면서 세월의 흔적과 함께 아름다운 건축미를 감상한 그 순간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