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꿈길 등반 - 2012년 4월 28일

빌레이 2012. 4. 29. 10:22

올 들어 처음 하는 암벽 등반이다. 발목 골절상을 당하여 두 차례의 수술을 받은 몸 때문에 두려움이 앞선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트라우마는 서서히 자연스럽게 봄눈 녹듯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등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시간이 오래되어 잊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을 떠난 나의 삶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위산도 산이고 육산도 산이다. 산을 온전히 즐기고 느끼면서 산으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서는 산의 형태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주위에선 내 몸에 맞는 편안한 등산을 즐기라고 말한다. 모두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에서 한 말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산을 대하는 내 마음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금의 내게 산이 없거나 원하는 산행을 하지 못한다면 많이 힘들 것이다. 산에서 당한 부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반성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더 나은 산행을 이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더 바람직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욥기에도 의인에겐 시험이 임하고, 그 시험을 견뎌내면 두 배 이상의 축복이 주어진다는 내용이 있다.

 

집을 나설 때 위와 같은 복잡한 생각이 뇌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우이동에서 친구들을 만나니 모든 게 편안해졌다. 정신, 해식, 은경, 나, 이렇게 네 명이 꿈길 등반의 한 팀이다. 산에서는 가장 마음이 편하고 친한 친구들이니 서로를 한 몸 같이 믿을 수 있어서 좋다. 실로 오랜만에 우이동에서 출발하는 등반길에 나선다. 육모정고개로 향하는 정규 등산로의 중간쯤에 좌측으로 갈라지는 꿈길 진입로가 있다. 조그만 계곡을 타고 오르다보면 케른(돌무더기탑)이 보인다. 안전등반을 기원하면서 해식이가 케른에 돌 하나를 얹어 놓는다.

 

꿈길은 전체 7 피치 정도 되는 릿지길이다. 피치가 길지는 않지만 난이도는 상당하다. 최고난이도는 5.10a로 기록되어 있다. RCW산악회에서 2011년 2월에 개척한 루트라고 한다. 선등을 맡은 정신이는 한 달 전에 올라봐서 익숙한 것 같아 한층 더 안심이 되었다. 일 년 넘은 공백기를 가진 내게는 모든 피치가 쉽지 않았다. 선등하는 정신이의 믿음직한 모습과 어린 아이 다루듯 내 몸을 살펴주는 해식이와 은경이의 배려 덕택에 그나마 마음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3 피치는 홀드가 양호하지 않아 어려웠고, 4, 5, 6 피치는 거의 직벽처럼 느껴졌다.

 

정신이가 선등하여 간접 빌레이로 거의 나를 끌어 올려 주었고, 내 뒤를 은경이와 해식이가 차례로 올랐다. 내가 등반을 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정신이와 해식이는 꾸준히 인공암장에서 연습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처음 입문하는 사람처럼 떨리는 나와는 달리 등반을 즐기는 친구들의 모습이 듬직하고 멋져 보였다. 중간 중간 크럭스에서는 주마링도 하면서 마지막 직벽을 끝내고 나니 무엇보다 안전하게 올랐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꿈길 정상엔 진달래가 예쁜 모습으로 하늘거리고 있었다. 북한산 상장능선과 도봉산 오봉이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감회가 다른 때와는 달리 특별했다. 그동안 나와 같이 안전하게 등반할 날을 기다려주고, 이 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준 세 친구들이 더욱 살갑고 애틋하게 여겨졌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난 다시 바위에 붙을 엄두도 내지 못 했을 것이다. 북한산 꿈길 정상에서 보는 진달래와 연초록 숲이 그 어느 때보다 예쁘게 웃고 있었다. 친구들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꿈길도 뒤에서 웃고 있다.      

   

1. 꿈길 정상의 진달래... 좌측으로 뻗어나가는 상장능선과 오른쪽 멀리 오봉과 도봉주릉..

 

2. 꿈길 진입로로 들어서면 중간쯤에 만나는 케른..

 

3. 꿈길 시작점엔 고수들의 놀이터인 암장이 있다..

 

4. 꿈길 1 피치 시작점... 앞선 팀이 오르고 있다..

 

5. 꿈길 오른쪽엔 대슬랩이 있다... 거기서 연습 등반하는 이들도 있다..

 

6. 홀드가 양호하지 않아 애 먹었던 3 피치를 은경이가 오르고 있다..

 

7. 정신이는 시종일관 여유있게 선등하며 간접빌레이 보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8. 해식이는 언제나 쾌활하다... 내가 낑낑대던 곳에서의 오름짓도 간단히 해치운다..

 

9. 3 피치를 오르고 나니 본격적인 직벽 구간이 보인다... 사진 찍을 때만은 스마일..ㅎㅎ..

 

10. 앞 팀이 정체되고 있는 사이에 우리는 사진찍기 놀이를 한다... 얼마만의 바위인가?..

 

11. 4 피치를 오르고 있는 앞팀... 꿈길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높다..

 

12. 실질적인 마지막 피치인 6 피치 출발 지점엔 멋진 소나무가 있다..

 

13. 꿈길의 하일라이트는 4, 5, 6 피치... 여기서부터는 고도감도 상당하다..

 

14. 꿈길이 자리잡은 골짜기는 이제 막 연초록의 향연을 시작 중이다.

 

15. 마지막 직벽 구간 선등 중 여유있게 쉬고 있는 정신이의 모습... 듬직하다..

 

 

16. 자일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낑낑대는 내모습...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ㅎㅎ

 

17. 꿈길 정상에서 내려다 본 루트..

 

 

18. 바위에 뿌리내려 더욱 아름다운 진달래..

 

19. 정상에서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 멋진 넘들.. 

 

20. 육모정고개로 하산하던 중 바라본 꿈길 마지막 직벽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