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심설 산행 - 2010년 12월 28일
후배인 한교수와 둘이서 일박이일 설악산 등반을 계획한 날이다. 밤새 서울에 십여센티의 눈이 내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9시 20분 출발하는 오색행 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중청산장에 예약도 해놓은 상태였다.
설악산 등반 예정으로 꾸린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선다. 온세상이 하얗게 변해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사이 휴대폰 문자를 확인한다.
강풍과 폭설로 설악산 등반이 불가하다는 내용이다. 순간 기분이 상한다.
한교수는 등산 초보자이고 동계등반이 처음인 사람이다. 여러 가지 준비물을 갖추고 설레임 속에 출발했을텐데 낭패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한교수는 지하철 속이라 한다. 수락산이라도 가서 겨울산을 느끼기 위해 당고개역으로 오라고 전한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걷기로 한다.
일터로 출근하는 분들에게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붐비는 버스를 피하기로 한다.
모모도 쉰다하여 수락산 눈 산행에 동참하기로 한다. 길을 걸을 땐 대로변을 피하는 습성이 있다.
미아역 가는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여기저기서 자기 집앞의 눈을 치우고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좋다.
하지만 잠시 방심한 탓일까, 빙판에서 넘어지고 만다. 오른쪽 무릎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난다. 인대가 늘어난 게 틀림없다.
그래도 한교수와의 약속을 취소할 수 없어 당고개역으로 향한다. 절름발이 걸음새지만 산행은 가능할 것 같다.
모모가 함께하니 어느 정도 마음은 놓인다. 당고개역 구내에서 아이젠, 스패치 등의 장비를 착용하고 셋이서 출발한다.
곰바위 능선길은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다. 익숙한 길이지만 등로를 찾는 것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
눈이 제법 쌓인 상태라 설맹 비슷한 현상도 느껴진다. 나뭇가지와 사람의 흔적들로 루트를 찾아가니 영락없는 심설산행이다.
외곽순환고속도로의 소음이 사라질 즈음 아침 식사를 한다. 휘발유 버너에 불을 키고 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으니 겨울 산행 분위기 최고다.
설악산에 갈 준비를 했으니 먹을 것이 풍족해서 좋다. 커피도 끓여 마시고 눈을 녹인 물을 이용해 설겆이를 하니 간편하다.
휴대폰 문자를 다시 확인해보니 설악산 입산통제가 풀렸다 한다. 한편으론 이해가 가지만 참 한심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수락 주능선 초입인 도솔봉을 향해 오른다. 중간에 눈쌓인 슬랩으로 길을 잘 못 들기도 한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손톱이 약간 깨진다. 여러 모로 일진은 좋지 않은 날이다. 그래도 멋진 설경 때문에 운치있는 산행을 계속한다.
도솔봉 안부에 도착해서 불암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덕릉고개 가는 길이다.
다리를 절면서 하산하다 또 한 번 미끄러진다. 아침에 다친 부위를 이번엔 제대로 확인시켜준다.
불암산까지 종주하겠다는 생각은 접고 천천히 하산한다. 덕릉고개의 예비군 교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번에도 휘발유버너를 키고 카레와 햇반으로 카레죽을 만들어 먹는다. 맛이 일품이다.
동계 산행을 처음 하는 후배에게 어느 정도 겨울 산행의 정취는 보여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해식이와 정신이도 수락산에 온 모양이다. 수유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무릎은 여전히 좋지 않다.
당고개역에 도착하니 비로소 등산이 끝난다. 눈과 내 다리 때문에 평소보다 두배의 시간이 걸렸지만 재미 있는 산행이었다.
모모가 시종일관 후미에서 든든히 한교수를 배려해주어서 비교적 맘 편한 산행이 되었던 것 같다.
한교수를 먼저 보내고 수유역에서 해식과 정신이를 만났다. 해식이는 태국 출장 이후 처음 보니 아주 반갑다.
인천이도 수유역으로 오는 중이라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 먼저 일어난다.
정형외과에 가니 예상대로 오른쪽 무릎 측부인대가 늘어났다고 한다. 한 2주 정도는 조심하며 치료해야 할 것 같다.
등산학교 빙벽반 개강일 전에는 나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연말에 나주와 광주에 내려갈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연말연시를 조용히 보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동안 못다한 독서나 하면서 무릎 치료에 전념해야겠다.